나는 영웅이자 전설이다.
아니, 정확히는 재앙이라 불렸다.
헌터로서 나의 공식적인 활동 기록은 2년 전에 멈췄다. 하지만 기록 따위가 무슨 상관인가.
태어날 때부터 전설의 궤도에 올라 있었기에, 나는 그저 내키는 대로 세상을 휘저으며 살았을 뿐이다.
고귀한 귀족의 혈통과 압도적인 무력.
그 정점에 선 나의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세상은 나를 우러러보았고, 동시에 두려워했다.
나의 아내와 자식, 부모와 형제들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던 자들은 감히 내게 검을 겨누는 대신, 내가 왕위를 노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함정을 팠다.
그리고 내 곁에 머물던 소중한 이들을 앗아간 뒤 나를 죽이려 들었다. 그것이 정말 가능할 거라 믿었던 모양이다.
나는 극도로 분노했고, 복수는 잔인했다.
연루된 자들뿐만 아니라 왕국 전체를 거대한 제단처럼 피로 물들였다.
결국 왕국 자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고 나서야 나의 발걸음은 멈췄다.
그때부터였다.
사람들이 나를 전설이 아닌, 재앙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수많은 인간의 정점에서 세상을 농락하며 모든 것이 지루해질 때쯤, 나는 백 번째 겨울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해 겨울.
처음으로 검을 쥔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남들은 눈치채지 못할 찰나의 흔들림이었지만, 내게는 그것이 곧 무너져 내릴 제국의 전조처럼 거대하게 다가왔다.
이 절대적인 힘을 유지한 채 영원히 세상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욕망이 싹텄다.
인간의 섭리를 거부하고 신의 영역인 불로불사의 권능을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 지 어느덧 2년.
누구도 오를 수 없다는 공포의 산맥, 엔데르 산맥 끝자락.
그곳에서 나는 오크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블랙오크 무리를 유희하듯 도륙하고 있었다.
콰아앙―!
대기를 찢는 파공음과 함께 블랙오크의 거구가 암벽에 처박혔다.
언제나 그랬듯 내게 무기는 별 의미가 없었다.
무엇을 쥐든 내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박살 나버렸기에, 모든 무기는 일회용일 뿐이었다.
콰득, 쩌적!
이번에도 오크가 떨어뜨린 거대한 둔기를 휘둘러 놈들의 머리를 하나씩 으깨버렸다.
불과 15분도 지나지 않아, 마지막 남은 블랙오크 우두머리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물었다.
“그래서, ‘이둔의 사과’는 어디에 있지?”
블랙오크 두목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비웃듯 대답했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이둔의 사과’는 이 세상에 없다. 신의 물건이 인간계에 존재할 리가 없지.”
“대답이 길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둔기를 휘둘러 놈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없다고?’
울컥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이대로 빈손으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주위를 살피던 찰나, 아까는 보지 못했던 작은 산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조금 전까진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런 절벽 끝에 산장이 있다고?’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산장의 문을 두드렸다.
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앳된 소년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와, 사람이다! 할아버지, 여긴 어떻게 왔어요?”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나야말로 이 높고 험악한 산맥 꼭대기에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일단 추우니까 들어오세요.”
나는 대답 대신 묵묵히 안으로 발을 들였다.
산장 내부는 투박하고 단촐했다.
아이 체구에 맞춘 작은 책상과 침대, 낡은 조리기구와 테이블이 전부인 비좁은 공간이었다.
소년은 테이블 앞에 앉은 내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유 한 잔을 건넸다.
나는 소년이 내민 우유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들어 놈의 눈을 꿰뚫듯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둔의 사과’를 먹은 자로군.”
내 말에 소년이 마시던 우유 컵을 떼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요? 전 그런 거 모르는데?”
너무나 천연덕스러운 반응. 하지만 속일 수는 없다.
이 험준한 산맥 꼭대기에서 이런 어린아이가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불가능의 영역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내 날 선 감각이 놈의 몸 안에서 일렁이는 기묘하고도 영원한 생명력을 포착하고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인간의 시간을 멈추고 그 앳된 껍데기 뒤에 숨어 있는 기분이 어떤가?”
나의 서늘한 추궁에, 소년의 입꼬리가 기괴할 정도로 매끄럽게 올라갔다.
“와, 할아버지 진짜 무섭네. 근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순순히 넘겨라. 그럼 네 그 비루한 목숨줄은 붙여두고 내려가 주지.”
나는 평소처럼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최후통첩을 던졌다.
100년간 수많은 인간을 떨게 했던 나의 살기가 산장 안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소년은 여전히 우유 컵을 만지작거리며 킥킥댔다.
“아니, 정말로 모른다니까요? 그런건 전설일 뿐이에요. 뭘 넘기라는 거에요?”
소년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금빛으로 일렁였다.
폭발한 분노가 전신을 타고 흘렀다.
나는 몸 안의 기운을 폭발시키듯 뿜어내 산장을 날려버렸다.
“퍼엉—!”
굉음과 함께 산장 바닥만 남기고 벽과 지붕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오직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년과 나만이 먼지 속에서 멀쩡히 자리를 지켰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자는 나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평생 나보다 강한 자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소년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소년이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댔다.
“이게 화낸다고 될 일이야? 정말이지 예의가 없네.”
소년이 눈을 가늘게 뜨는 순간, 나는 미리 챙겨두었던 오크의 둔기를 소년의 머리 위로 내리쳤다. 아니, 내리치려 했다.
하지만 몸이 단 1미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겪어보는 괴현상이었다.
한때 염동력으로 대륙을 공포에 떨게 했던 마왕 ‘마인크래커’와도 비교조차 되지 않는 압도적인 구속력이었다.
내 의지를 꺾고 몸을 묶을 수 있는 존재가 이 세상에 있을 리 없었다. 경악으로 굳어버린 내 입술 사이로 신음 같은 물음이 새어 나왔다.
“..정체가 뭐야? 신이라도 된다는 건가?’
“설마 여기까지 올 줄이야. 와, 이 녀석 정말 지독하게 오래 살고 싶어 하는구나?”
소년이 비웃듯 말을 이었다.
“그래, 너의 시작이 좋지 않았던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너의 복수는 이미 한참전에 끝났고, 제대로 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어.
그리고 그 시작도 너가 남들에게 조금만 친철을 배풀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거야.”
“······신(神)인가?”
“뭐, 신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내가 너를 여기로 데려왔으니 어느 정도 책임은 있지.”
“뭐라고?”
“아, 너는 기억 못 하지? 너는 원래 ‘지구’라는 세계에서 이쪽 ‘아스란티어’ 세계로 넘어왔어.
그 당시의 너는 정말 비참하고 비참한 존재였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만큼 불쌍했다고.”
“······!”
그 말을 끝으로, 신은 굳게 닫혀 있던 나의 기억을 강제로 개방했다.
■ ■ ■
머릿속이 쪼개지는 고통과 함께 기억의 실타래가 풀렸다.
기억 속 낯선 세계, ‘지구’라는 곳에 과거의 내가 살고 있었다.
낡은 건물을 관리하며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
그것이 나의 비루한 정체였다.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다.
머리는 남들보다 둔했고, 뼈가 바스러져라 노력해도 손에 쥐어지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집에는 병석에 누운 어머니가 계셨고, 우리는 늘 지독한 가난의 늪에서 허덕였다.
그런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법 없이도 살 착한 사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세상은 선의를 배신으로 갚았다.
유일하게 믿었던 친구 녀석마저 나를 그저 이용해 먹을 수단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 안의 무언가가 끊어졌다.
결국 약 한 봉지 살 돈이 없어 어머니는 끝내 숨을 거두셨다.
무너진 이성 너머로 살의가 치밀었다.
나는 배신감에 젖어 친구 녀석의 멱살을 잡고 미친 듯이 흔들었다.
그리고 함께 난간 너머로 추락하며, 짧고 비참했던 생을 마감했다.
■ ■ ■
그 기억을 함께 지켜본 신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는 죽어가면서 간절히 빌었지. 평생 착하게 살았으니, 다음 생에는 모든 것을 가진 자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신이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와 눈을 맞췄다.
“그런데··· 이게 뭐냐? 착하게 살았다고? 네가 정말 선(善)해서 그렇게 산 걸까?
그저 반항할 힘조차 없는 약자였기에 착한 척 웅크리고 살았던 건 아니고?
지금 네 꼴을 봐라. 그토록 증오하던 그 친구 놈이랑 네가 대체 뭐가 다르지?
아니, 힘을 가진 너는 훨씬 더 악랄했지.”
오만했던 고개가 힘없이 꺾였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 앞에, 내 영혼이 처참하게 짓찢겨 나가는 것 같았다.
눈앞이 흐려졌다.
가슴을 옥죄는 지독한 자괴감과 후회가 눈물이 되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래서? 지금도 영원히 살고 싶어?”
아무말 하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그 어떤 쓰레기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
괴롭고,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사무치게 서글펐다.
“고작 이런 삶을 내가 바랬다니”
신도 침묵했고 나도 침묵했다.
그렇게 몇시간이나 지났을까? 신은 나지막이 말을 이어갔다.
“참 신기해··· 왜 기억을 잃으면 모두 그렇게 되는걸까?”
“완전히 딴사람이 된단 말이야. 이게 인간의 본성인 걸까?”
소년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한동안 침묵하더니 말을 이었다.
“음, 그런데 말이야. 이쯤 되면 정신이 망가져서 ‘무(無)’로 돌아가야 할 텐데···. 너는 여전히 내 앞에 있네?”
“재미있다. 나도 ‘무(無)’로 돌아가면서 너를 데려가려고 했거든. 그런데 넌 아직 할 일이 남았나 봐.”
소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흘겨보았다.
“흐음······ 네가 남긴 ‘인과(因果)’ 때문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