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자
39화 드래곤(3)
쉐론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드래곤이 남겨둔 팻말을 쑥 뽑아 들었다. 뭐, 어찌 됐든 상황은 완벽하게 정리되었다. 우리는 동굴을 빠져나와 곧장 실베리아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드래곤의 행방을 몰라 잔뜩 불안에 떨고 있을 길드 측에 이 황당한 팻말을 증거품으로 척 제출하며, 드래곤 둥지를 발견했으나 녀석은 이미 야반도주를 한 상태였다고 대충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길드장과 직원들은 팻말만 보고는 … 더 읽기
38화 드래곤 (2)
지독하게 매달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문득 기묘한 감각이 발끝에서부터 차올랐다. ‘······너도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뿐이겠지.’ 처절하게 울부짖는 그 목소리 위로, 전생의 지구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으려 허우적대던 나의 옛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는 녀석에게 사념을 보냈다. ‘알았으니까 그만 징징대. 안 죽여.’ [—정말이지? 진짜 약속했다? 나 절대 안 죽이는 거지? 근데······ 나 몸은 작아졌어도 드래곤이라 자주 … 더 읽기
37화 드래곤(1)
우리는 벨하임에서 비교적 멀지 않은 실베리아 대삼림으로 들어섰다. 과연 대삼림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딱 어울리는 울창한 숲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내게 실베리아는 그저 심심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라는 인식뿐이었다. 하지만 쉐론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하나 있었다. 어제 술집에서 노병 가레스와 대화하던 중, 과거 시절에 이곳 대삼림에서 숨통을 끊지 못하고 놓쳤던 드래곤 한 마리가 문득 기억났기 때문이다. 내 … 더 읽기
36화 백전노장 가레스
“네가 진짜 죽어버린 줄 알았어. 한동안 정말 숨이 완전히 멈춘 것처럼 보였다고······. 그러다 어느 순간 겨우 숨통이 돌아오더라. 정말······ 정말 다행이야.” 쉐론이 금방이라도 다시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기절해 있던 순간의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쉐론의 떨리는 목소리가 당시의 아찔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설명해 준 셈이었다. 동시에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 더 읽기
35화 우로보로스의 새끼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니 제 생명을 깎아 먹으면서까지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그 숭고한 대사에 엘프의 감성이 완전히 저격당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마치 세상의 구원자를 바라보는 듯한, 기특함과 애틋함이 가득 담긴 손길이었다. “······칼로스는 제 욕망을 위해 세상을 망쳤는데, 너는 네 생명을 줄여가며 세상을 구하는구나.참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해.” 눈물겨운 찬사였다. … 더 읽기
33화 둘만의 비밀
뜻하지 않게 알아서 저주라 짐작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며, 들통난 게 못내 쑥스러운 척 처연한 연기 톤을 잡고 대답했다. “맞······ 맞아요. 하아, 결국 이렇게 들통이 나고 마네요.” “······.” “이 반지는······ 남은 수명을 제물로 바치는 대가로, 찰나의 폭발적인 힘을 허락하는 저주의 유물이거든요.” “어쩌다가 그런 위험한 유물을 끼게 된 거야?” 쉐론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 더 읽기
32화 마력을 삼킨 대가
나는 망토의 깃을 고쳐 잡으며 숲길을 치고 나가는 적들의 등 뒤로 소리 없이 따라붙었다. 그렇게 레이나 일행이 있는 리버포드로 향하는 여섯 명의 무리를 바짝 추격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달리던 녀석들이 돌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중 조장쯤 되어 보이는 녀석이 귀찮다는 듯 짜증스레 무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정말 못해먹겠네. 이미 목표가 사라진 걸 어쩌겠어.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