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차 뜻밖에 습격

그때 경계를 서고 있던 무리 중 한 녀석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야, 이거 그냥 미친 짓 아냐? 그런 의식을 치른다고 해서 진짜로 그 평민 놈 힘이 영주님 몸에 고스란히 깃들까?”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녀석이 픽 웃으며 대꾸했다.

“뭐, 우리야 알 게 뭐야. 영주님한테 돈만 두둑하게 받으면 장땡이지.”

그러자 또 다른 놈이 진지한 목소리로 끼어들며 이야기를 했다.

“아니야,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나도 예전에 이런 어둠의 의식을 통해서 상상도 못 할 만큼 강해진 자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거든.”

흑마법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내가 살아온 이 아스란 티어 대륙에는 수많은 형태의 마법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악질적이고 추악한 마법이 바로 흑마법이다.

주로 살아있는 사람을 희생시켜 힘을 탐하는 술식이라 대부분의 왕국에서는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법의 눈을 피해 음지에서만 암암리에 행해지기에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그 금단의 흑마법을, 한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가 어디선가 입수해 이 모든 끔찍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산 정상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에 도착하자, 레이나가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근방에 아이들이 있을지 모르니, 어서 찾아보죠.”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내일 당장 의식이 거행된다면, 제물로 쓸 아이들을 멀지 않은 곳에 숨겨두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쉐론이 빌을 힐끗 보며 말했다.

“우리 지난번에 정했던 파트너끼리 조를 나누어 찾아보도록 합시다.”

그 말에 빌이 싱글벙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게 좋겠네!”

늘 생각했던 거지만, 역시 빌은 레이나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저렇게 티가 나서야 원.

쉐론은 자신의 매직백에서 작은 피리 하나를 꺼내 레이나에게 건넸다.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이 피리를 불어. 그러면 우리가 바로 갈게. 이건 나한테 맞춰 특수 제작된 피리라, 아무리 멀리서 불어도 나만큼은 또렷하게 들을 수 있어.”

옆에서 듣던 빌이 고개를 가웃하며 물었다.

“오, 신기한 물건이네. 근데 반대로 너희가 위험해지면 어떻게 하지? 우리는 너희 상태를 알 수가 없잖아?”

“잠시만요.”

레이나가 품에서 마법 종이를 꺼내어 그 위에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미세한 마력이 종이 위에 주술처럼 깃드는 게 보였다.

레이나가 종이를 우리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종이에 제 마력을 걸어놨어요.
한스 씨와 쉐론 씨가 아이들을 먼저 발견하거나 위험에 처하면 이 종이를 찢으세요.

그러면 제게 곧바로 감각이 전해질 거예요.

다만 마력의 효과가 오래가지는 않으니, 별다른 소득이 없더라도 3시간 뒤에는 다시 여기로 모이기로 해요.”

그렇게 우리는 레이나의 마법 종이를, 레이나 조는 쉐론의 피리를 각각 챙겨 들고 흩어졌다.

수풀을 헤치며 쉐론과 함께 이동하던 중, 내가 슬쩍 곁눈질을 하며 물었다.

“그 피리, 사실 다른 사람 귀에는 안 들리고 오직 엘프들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나는 물건인가요?”

내 질문에 쉐론이 조금 놀란 듯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한스. 생각보다 눈치가 제법 빠르네?”

그렇게 약속했던 3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아무런 소득 없이 한 차례 다시 모였다가 재차 수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산속 곳곳을 샅샅이 뒤지던 중 쉐론이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니 동굴 하나가 보였다.

그 앞에는 익스퍼트 급 전사 한 명과 워리어 네 명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누가 봐도 무언가 중요한 것을 지키고 있다는 티가 팍팍 났다.

‘다행히 빨리 발견했다. 아이들은 저기 있군.’

나는 곧장 품에서 레이나가 준 마법 종이를 꺼내 찢었다.

그런데 그 순간, 쉐론이 기이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쉐론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피리 소리가 들려.”

‘어쩌지?’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레이나가 피리를 불었다면 상황은 둘 중 하나였다.

아이들을 찾았거나,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위기 상황이거나. 하지만 아이들이 있는 동굴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다.

그렇다면 저쪽은 완연한 위기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일단 아이들 위치를 확보했으니, 우리는 서둘러 레이나 조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쉐론이 피리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거침없이 앞장서서 나아갔다.

얼마쯤 달렸을까, 저 멀리 숲속에서 무언가 거칠게 부서지는 파공음과 함께 부러진 나무 파편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시야를 넓혀 확인해 보니, 거대한 곰형 몬스터 한 마리가 레이나와 빌을 맹렬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소리쳤다.

“저거······ 블러드 그런트 베어 같은데요?”

하필 이런 곳에서 저런 고위 마수를 마주칠 줄이야.

최소 브론즈급 파티가 3팀 이상이 싸워야 하는 괴물이었다.

지금 우리 파티의 전력으로는 정면 승부는커녕 발악해 보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대였다.

앞장서던 쉐론이 지체 없이 블러드 그런트 베어를 향해 마검의 검기를 날렸다.

슈우욱!

팍!

하지만 블러드 그런트 베어는 고통으로 인해 더욱 광포해져 사납게 앞발을 휘둘렀다.

정면에서 버티던 빌이 그 무지막지한 타격을 이기지 못하고 저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빌!”

녀석이 곧장 레이나를 향해 쇄도하자, 뒤늦게 합류한 쉐론이 급하게 몸을 날려 레이나를 끌어안고 구르며 간신히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수풀을 구르는 과정에서 두 사람 모두 큰 부상을 입은 듯 보였다.

이대로 두면 다 죽는다.

나는 들고 있던 미스릴 검을 움켜쥐고 달려들어 녀석의 다리를 강하게 베어 넘겼다.

서걱!

하지만 녀석의 가죽은 생각보다 훨씬 더 단단했다.

미스릴 검으로도 깊은 타격을 주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대신 제대로 어그로가 끌렸다.

잔뜩 화가 난 블러드 그런트 베어가 타깃을 나로 변경하고 맹렬하게 포효했다.

‘그래, 오히려 잘됐다.’

나는 전력을 다해 반대편 숲으로 뛰기 시작했다.

블러드 그런트 베어는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압도적인 속도로 추격해 왔다.

한참을 헉헉대며 필사적으로 도망치다 보니, 다행히 동료들의 모습이 완벽하게 가려질 만큼 멀어졌다.

그리고 내 앞은 탁 트인 절벽이었다.

더는 도망칠 곳이 없는 막다른 길.

나는 달려가던 관성 그대로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쑥 뽑아냈다.

파아앗―!

순식간에 전신을 옭아매던 제약이 풀리며, 칼로스의 모든 감각과 마력 회로가 폭발하듯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절벽 끝에서 급제동하듯 멈춰 서며 순식간에 몸을 돌렸다.
그리고 지체 없이, 다가오는 블러드 그런트 베어를 향해 미스릴 검을 수직으로 휘둘렀다.

콰아아앙!

공기를 가르는 검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그 거대하던 블러드 그런트 베어가 단 일격에 정확히 두 동강이 났다.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반으로 갈라진 괴수의 사체는 그대로 절벽 아래 깊은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상황 종료.

나는 잽싸게 반지를 다시 손가락에 밀어 넣었다.

“크으윽······!”

반지가 완전히 끼워지자마자, 온몸의 마력과 근육이 요동치며 엄청난 반동과 충격이 전신을 덮쳐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에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몇 초나 지났을까, 숲을 헤치며 쉐론이 다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스! 한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한 그녀가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블러드 그런트 베어는? 어떻게 된거지?”

쉐론이 묻자, 나는 간신히 아픈 몸을 가누며 절벽 아래를 힐긋거리며 말했다.

“다행히······ 절벽 아래로 추락 했어요.”

“정말······ 천운이네.”

“하아, 천운이다, 정말······ 헉, 헉······”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쉐론이 아직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나를 부축하여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전투 현장에 도착해 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방패로 정면을 막아섰던 빌은 뼈가 몇 대 부러진 듯 중상을 입고 신음하고 있었고, 레이나 역시 꽤 크게 다쳐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나는 서둘러 매직백을 뒤적여 지난번 마을에 들렀을 때 구매해 두었던 미들 포션을 꺼냈다.

그리고 아낌없이 그들의 입에 부어주었다.

싸구려 로우 포션과 달리 미들 포션의 효과는 확실했다.

상처가 빠르게 아물며 호흡이 안정되자, 겨우 정신을 차린 빌이 나를 올려다보며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한스······ 고맙다. 진짜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옆에 있던 레이나 역시 진심으로 고맙다는 듯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눈물겨운 감사를 받으며, 나는 겉으로 부끄럽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완전히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 없었으면 니들은 벌써 저세상으로 몇 번은 가고도 남았어. 진짜 상상이 안 된다, 자식들아.’

물론 이 오만한 진심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나는 그저 착한 동료의 가면을 쓴 채 흐뭇하게 웃을 뿐이었다.

‘근데, 여기가 그렇게 깊은 산도 아닌데 왜 블러드 그런트 베어가 있지?’ 상념에 빠졌다.

오늘 당장 아이들을 구출해 내지는 못했지만, 의식이 거행되기 전까지는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터였다.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익스퍼트 급이 버티는 동굴 앞 무리들에게 들키는 것보단 전력을 온전히 가다듬는 게 우선이었다.

우리는 일단 안전한 곳으로 물러나 부상 치료와 회복에 힘을 썼다.

그렇게 폭풍 전야 같은 밤이 지나고, 마침내 결전의 다음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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