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보이지 않는 수호자

뒤쪽에 서 있던 녀석이 악에 받친 고함을 지르며 나를 손가락질했다.

지난번 숲에서 내게 그릇을 맞아 눈이 찢어지고, 칼까지 빼앗겼던 바로 그놈이었다.

“저놈입니다! 저놈이 분명 칼로스의 유물을 훔친 놈일 겁니다!”

우두머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하나만 묻지. 네놈이 칼로스의 유물을 가져갔나?”

“그럴리가요··· 하···”

내가 칼로스 본인인데 무슨 유물을 가져가나, 나 원 참.

내가 피식 웃자. 녀석이 노기가 서린 눈으로 쏘아붙였다.

“웃어?”

“이놈도 범상치 않아 보인다. 한꺼번에 공격해! 죽여!”

여덟 명이 동시에 달려드는 찰나, 나는 판단했다.

이 비루한 몸으로는 두 명까지가 한계다.

저 상급 실력자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다.

다행히 레이나 일행은 기절해 있다.

반지를 개방해도 문제는 없을 터였다.

5초면 충분하다. 나는 씩 웃으며 반지를 비틀었다.

스윽, 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지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아득해졌다.

내 심장이 고작 한 번 고동치는 찰나, 주변 녀석들의 움직임이 진흙탕 속에 갇힌 것처럼 느려터진 화면으로 변했다.

폭발적인 반동과 함께 대지를 박찼다.

힘을 제어하지 못한 발끝이 땅을 파헤치며 흙먼지를 뿜어냈다.

인지를 초월한 속도로 거리를 좁히자, 우두머리 녀석은 눈동자조차 굴리지 못한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녀석의 턱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악력을 쥐었다.

콰직, 단단한 뼈가 손아귀 안에서 힘없이 으스러지는 촉감이 손끝을 타고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대로 팔을 위로 꺾어 올렸다.

뚜둑, 가죽이 뜯겨나가는 기괴한 파열음과 함께 녀석의 머리통이 날것 그대로 뽑혀 올라왔다.

내 손과 소매 위로 뜨거운 피가 울컥 쏟아졌지만, 느낄 새도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서 마법사가 다급하게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마력을 짜내고 있었다.

입술을 달싹이는 꼴이 가소로웠다.

나는 방금 뽑아낸 우두머리의 머리통을 녀석의 안면을 향해 포탄처럼 통째로 내던졌다.

콰아앙!

사람의 머리와 머리가 부딪치는 무식하고도 압도적인 충격.

마법사의 머리통은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잘 익은 수박처럼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뇌수와 뼛조각이 뒤섞인 비린 파편들이 허공에 정지한 듯 느리게 흩뿌려졌다.

그사이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우두머리의 몸뚱이에서 검 한 자루가 힘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허공에서 낙하하는 검자루를 매끄럽게 낚아채며 힘껏 횡으로 그었다.

서슬 퍼런 검기가 궤적을 그리며 숲의 공기를 갈랐다.

스각―.

무기를 치켜들고 달려들던 하급 익스퍼트 두 명의 허리가 종잇장처럼 부드럽게 잘려 나갔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는 순간에도 녀석들은 자신들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해, 잘린 단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기 직전의 찰나가 내 눈에 똑똑히 박혔다.

그 뒤쪽, 혼비백산하여 다급하게 푸른빛의 방어막을 전개하는 룬 나이트가 보였다.

검을 휘두르는 것조차 아까웠다.

나는 발밑에 굴러다니던 주먹만 한 돌멩이를 향해 사정없이 발길질을 날렸다.

파아앙!

음속을 돌파하는 파공음과 함께 날아간 돌멩이는 룬 나이트가 자랑하는 견고한 방어막을 거품처럼 가볍게 부수어 버렸다.

직후, 콰직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가슴뼈를 통째로 으스러뜨리며 녀석의 등 뒤로 피를 뿜으며 관통해 나갔다.

사방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기와 피의 향연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남은 잔당들의 품으로 파고들어 주먹과 발로 그들의 복부를 사정없이 짓뭉개버렸다.

퍽, 퍽, 소리가 날 때마다 내 손끝에 녀석들의 장기가 파쇄되는 진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난번 숲에서 간신히 목숨만 건져 달아났던 놈의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나를 향해 굴러왔다. 절망과 공포로 가득 찬 눈.

녀석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 입을 벌리려는 찰나, 나는 검을 내리꽂아 놈의 다리 한쪽을 거칠게 잘라버렸다.
그리고는 굴러떨어지는 놈의 몸뚱이를 축구공처럼 걷어차 저 멀리 숲 너머로 날려버렸다.

스산한 바람 소리가 그제야 귀를 파고들었다.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6초.

나는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서둘러 반지를 다시 손가락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은빛 반지가 살점을 파고들며 다시 손가락을 꽉 조여 오자마자, 세상의 시간이 원래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골수까지 얼려버릴 듯한 지독한 한기와 함께 전신의 세포 하나하나를 바늘로 찌르고 찢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크윽······!”

머리가 도끼로 찍힌 듯 깨질 것 같은 두통에 나는 바닥을 짚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날뛰고 있었다. 속이 뒤집히고 피가 마르는 이 감각.

‘수명이······ 깎여 나가는 건가.’

단 6초의 대가치고는, 지나치게 가혹한 고통이었다.

시야가 핏빛으로 물들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나는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레이나 일행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물가까지 몸을 옮긴 뒤에야 그대로 고꾸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니 여전히 사방은 어두웠다. 다행히 시간이 그리 많이 흐르지는 않은 듯했다.

‘레이나 일행은 깨어났을까?’

문득 처참했던 전투 현장이 떠올랐다.

사방에 흩뿌려진 피 냄새를 맡고 마수들이 몰려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다시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려다 멈칫했다.

언덕 너머 멀리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세 명······. 레이나 일행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행히 무사한 모양이었다.

나는 내 몰골을 살폈다. 말이 아니었다.

예전의 잔인했던 습성대로 유희를 즐기듯 놈들을 도륙한 탓에 온몸이 피칠갑이었다.

이대로 마주쳤다간 정체가 탄로 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들이 여기까지 도착하려면 적어도 15분은 걸릴 터였다.

나는 서둘러 차가운 물속으로 몸을 던져 핏물을 씻어냈다.
그러고는 피에 젖은 옷을 매직백에 처넣고, 여벌 옷을 꺼내 입었다.

어제 그 화려한 귀족 옷들을 처분하고 수수한 평상복들을 사둔 게 천만다행이었다.

몸단장을 마친 나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들을 찾아 헤맨 것처럼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 * *

“무, 무슨 일입니까! 이게 대체······!”

입술을 파르르 떨며 내뱉은 질문.

자동으로 입혀지는 나의 표정은 스스로 생각해도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급 연기였다.

겁에 질린 내 표정을 보자 레이나가 절박하게 소리쳤다.

“한스! 도와줘요! 빌이 많이 다쳤어요!”

나는 급히 달려가 빌의 육중한 몸을 등으로 받았다.

레이나가 부축하던 팔을 놓는 순간, 억 소리가 절로 났다.

“어? 으아악!”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아, 깜빡했다.

지금 내 몸은 전설의 칼로스가 아니라 저질 체력 한스였지.

바둥바둥하며 빌을 받쳐 드는 내 모습이 처량해 보였는지, 레이나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다시 거들었다.

“일단 근처에 개울이 있으니 그리로 가요. 마을도 머지않았으니까.”

아까 내가 피칠갑을 씻어냈던 바로 그 물가였다.

나는 매직백 안을 뒤적였다.

백 년의 세월 동안 온갖 잡동사니를 처넣은 탓에 물건이 산더미 같았다.

가장 먼저 손에 잡힌 건 ‘엘릭서’였다. 숨이 넘어가는 놈도 뒷덜미를 잡아 끌어올린다는 신의 물방울.

‘······이건 너무 오버군.’

그 옆엔 ‘하이 포션’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과했다.

더 깊숙한 곳을 헤집자 구석에 처박혀 있던 ‘미들 포션’ 하나가 보였다.

아마 십 대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풋내기 때 넣어둔 물건일 터였다.

무적에 가까운 삶을 살았고 상처도 금방 낫던 내게 포션은 그저 장식품에 불과했으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미들 포션을 꺼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쉐론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니, 그런 귀한 걸 가지고 다녀? 꽤 비쌀 텐데 이렇게 막 써도 되는 건가?”

“아······ 예전에 집을 나올 때 큰맘 먹고 샀던 거예요. 앞으로 저를 동료로 받아주실 건데, 이 정도는 해야죠.”

내 능청스러운 대답에 쉐론은 감동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사실 내게는 유통기한 지난 설탕물보다 못한 가치였지만 말이다.

포션을 빌의 입에 흘려 넣자, 곧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잿빛이던 안색이 돌아오고 깊게 파였던 자상이 눈에 띄게 아물기 시작했다.

“······으음, 몸이, 몸이 가벼워졌어.”

빌이 퉁퉁 부은 눈을 뜨며 감격스럽게 나를 보았다.

“고마워요, 한스. 당신 덕분에 살았습니다.”

레이나 역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다.

이 정도 투자로 이들의 신뢰를 샀으니 본전은 충분히 뽑은 셈이다.

‘자, 이제 나도 정식 동료인 건가?’

레이나와 쉐론 역시 여기저기 상처 입은 상태였지만, 더 이상 포션을 꺼내지는 않았다.

여기서 포션을 더 내놓았다간 ‘운 좋게 비상약을 챙긴 몰락 귀족’이 아니라 ‘움직이는 포션 상점’이 돼버릴 게 뻔했다.

적당히 선을 긋는 것도 연기의 기술이다.

빌의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레이나가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 마을로 가죠. 저희도 마을에 가서 제대로 회복을 해야겠어요.”

마을까지는 불과 한 시간 거리. 다들 지칠 대로 지친 탓에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그저 묵직한 침묵 속에서 길을 나아갈 뿐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밤의 장막이 내려앉은 모리야 마을에 진입했다.

일행은 내가 미리 예약해 두었던 여관으로 들어갔고, 그들은 곧장 방으로 올라가 지독한 여독과 부상을 달랬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빌과 동료들이 여관 주점에 모였다.

다들 헝클어진 머리에 피로가 가득한 안색이었지만,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나는 이제야 궁금한 게 떠올랐다는 듯,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 있던거죠?”

내 질문에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던 쉐론은 나를 빤히 보더니 되레 물었다.

“오히려 우리가 묻고 싶네. 한스, 대체 그 두 명을 어떻게 죽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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