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들은 쉐론의 무지막지한 검격과 쏟아지는 마법에 사방으로 튕겨 나갔고, 내 변칙적인 칼날에 발목이 잘려 나가며 순식간에 우왕좌왕 괴멸당했다.
마침내 피칠갑이 된 채 마지막으로 남은 두목 녀석이 바닥을 기며 손을 싹싹 빌었다.
“잘······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살려······!”
“늦었다.”
쉐론이 매정하게 마검을 휘둘렀고, 도적 무리는 그렇게 반항 한번 못한 채 전멸했다.
핏방울이 맺힌 검을 털어내던 쉐론이 슬그머니 내 발끝으로 시선을 내렸다.
눈독을 들이는 게 뻔히 보였다.
“역시 그 신발,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네. 나 주면 안 되냐?”
나는 흙먼지 묻은 신발을 뒤로 슬쩍 숨기며, 비굴하지만 단호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빙긋 웃으며 “안 됩니다.”라고 했다.
도적 두목이 숨을 거두자, 녀석이 가지고 있던 매직백이 주인을 잃고 격렬하게 요동쳤다.
퍼엉―!
순간, 통제를 잃은 마력이 폭주하며 가방이 사정없이 터져 나갔다.
가방이 품고 있던 아공간이 무너지면서, 그 안에 처박혀 있던 온갖 물건들이 비명처럼 사방으로 쏟아져 내렸다.
번쩍이는 보석과 귀중품들, 그리고 꽤 묵직해 보이는 골드 주머니들.
아마도 그동안 수많은 여행자와 행인들을 약탈해 강제로 갈취한 장물들이 분명했다.
사실 내 기준에서는 전부 별 의미 없는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내 호수 같은 재산에 물방울 한 방울 더 떨어뜨려 봐야 티도 안 나니까.
쉐론이 전부 독차지해도 내 알 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덥석 다 양보해 버리면 녀석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게 뻔했다.
평범한 한스라면 눈이 뒤집혀서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고 들어야 정상이었으니까.
결국 나는 적당히 욕심부리는 척 연기하며 쉐론과 전리품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다.
쉐론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뜻밖의 대박 횡재를 한 셈이라 은근히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렇게 굴러다니는 장물들을 대충 수거하던 바로 그 순간, 잡다한 물건들 사이에서 툭, 하고 이질적인 무언가가 떨어졌다.
어디선가 거칠게 구겨진 듯한, 군데군데 피가 묻은 채 이미 개봉되어 있는 편지 한 장이었다.
이미 누군가 읽은 듯 뜯어진 편지지를 펼쳐 보았다.
내용은 이러했다.
〈 싸이론 형에게.
대박이야, 형! 그 전설적인 ‘칼로스의 매직백’에 대한 정보를 얻었어.
적월의 달, 밤하늘에 두 개의 달이 겹쳐 흐르는 날 벨하임의 종탑에서 만나자.
자크가.〉
이건 무슨 개소리인가?
나는 일단 쉐론에게 보여주었다.
편지를 받아 든 쉐론이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우리 원정대가 엔데르 산맥에서 실종된 칼로스의 찢어진 살점 외에는 발견한 게 없는데다,
그때 유물들이 사방에 뒹굴고 있던 걸 보면 매직백은 이미 폭파한 게 분명하잖아?
가방 자체가 터져서 없어졌는데, 대체 누군가 칼로스의 매직백을 발견했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나는 쉐론에게 말했다.
“혹시 이거 그거 아닐까요?”
“응? 뭐?”
“칼로스의 매직백을 빌미로 한 사기요.”
쉐론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맞장구를 쳤다.
“하,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이지?”
나는 편지지를 슬쩍 접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확인은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편지를 받은 싸이론이라는 자가 벨하임으로 향하던 길에 이 도적단에게 기습을 당한 모양이었다.
놈들은 이 피 묻은 편지를 전리품으로 챙겨 들고, 자신들이 대신 약속 장소로 가려 했을 것이다.
쉐론 역시 내 생각에 군말 없이 동의했다.
더 지체할 이유가 없어진 우리는 곧바로 벨하임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우리는 작지만 꽤 활력이 넘치는 벨하임 영지로 들어왔다.
우선 머무를 숙소를 잡은 뒤, 곧장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오면서 처리했던 도적들의 토벌 증거로 그들의 매직백을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가방 안에 들어있던 장물들의 행방 따위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어차피 길드 입장에서는 의뢰를 달성했다는 확실한 증거만 있으면 그만이니까.
길드 직원의 말에 따르면, 이 도적 놈들은 주로 야영하는 여행자들의 허점을 노려 습격하던 질 나쁜 무리라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그리 크진 않지만, 제법 짭짤한 포상금을 손에 쥐고 길드를 나설 수 있었다.
마침 오늘 밤은 두 개의 달이 한 자리에 겹치는 날이었다.
우리는 일단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방이 물건을 사고파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북새통을 풍기고 있었다.
새로 받은 포상금 주머니를 허리춤에 든든하게 찬 채 걷고 있을 때였다.
열세 살 정도로 보이는 앳된 아이 하나가 내 앞을 지나치며 거세게 부딪쳐 왔다.
“앗, 죄송해요!”
아이는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이내 인파 속으로 잽싸게 몸을 숨겼다.
그때, 곁에 있던 쉐론이 내 옆구리를 툭 치며 낮게 속삭였다.
“한스, 방금 그 꼬마가 네 돈 주머니 털어갔다.”
허리춤을 슬쩍 내리깔자,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가죽 주머니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왕국을 멸망시켰던 재앙인 내가, 고작 시장바닥의 어린 쥐새끼에게 소매치기를 당하다니.
내게는 ‘도망자의 신발’이 있으니 당장이라도 녀석의 덜미를 잡을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도망자의 신발’은 사용자가 긴장 상태이거나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낄 때만 발동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고작 소매치기 따위는 나에게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으니, 지금 상황에서는 신발에 마력이 쥐 죽은 듯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기는 사방의 눈이 번뜩이는 시장 한복판이다.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 함부로 등급이 높은 유물의 힘을 드러냈다간, 소문이 퍼져 더 귀찮고 큰 위협을 불러올 게 뻔했다.
솔직히 내 기준에서 그깟 잔돈이야 차고 넘치니 통째로 빼앗겨도 아무 상관 없었지만, 문제는 곁에서 지켜보는 쉐론이었다.
평범한 한스라면 이 상황에서 눈이 뒤집혀야 정상이다.
“어? 내, 내 돈!”
나는 애써 당황한 척 연기하며, 다급하게 고함을 지르고는 아이가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녀석을 따라 허겁지겁 좁은 골목길로 들이닥쳤으나, 이미 사방으로 뻗은 샛길 어디에도 꼬마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완벽한 허탕이었다.
뒤따라온 쉐론이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차며 핀잔을 주었다.
“야, 이런 시장통에서 날치기를 당하냐? 넌 여전히 허술하기 짝이 없구나, 으이구. 방금 길드에서 탄 상금을 고대로 조공하다니 대단하다, 대단해.”
그렇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시장 근처의 적당한 식당에 들어가 대충 배를 채워야 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만큼, 나는 한동안 이어진 쉐론의 날카로운 잔소리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어느덧 사방에 어둠이 짙게 깔리며 완연한 밤이 찾아왔다.
하늘에 떠오른 두 개의 달이 완전히 겹쳐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남지 않았다.
우리는 영지 중앙에 우뚝 솟은 종탑 근처의 어두운 음지에 몸을 숨겼다.
이 밀회 장소에 어떤 위험한 놈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놓고 모습을 드러낸 채 기다리는 미련한 짓은 피해야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르고 두 달이 완벽하게 포개어졌을 무렵, 정적을 깨고 종탑 바닥 위로 길쭉한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졌다.
드디어 밀약의 당사자가 나타난 건가 싶어 숨을 죽인 채 주시했다. 하지만 어둠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대상을 확인한 순간, 나와 쉐론은 동시에 황당한 눈빛을 교환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 내 돈 주머니를 털어 가 가차 없이 허탕을 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소매치기 꼬맹이였기 때문이다.
녀석은 떡하니 종탑 밑에 자리를 잡고 선 채,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쉐론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모기 소리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까 그 녀석이잖아? 확 잡아서 족쳐볼까?”
나는 쉐론의 제안에 동의한다는 듯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품에서 내 가죽 주머니를 꺼내 시시덕거리며 골드를 세고 있었다.
나는 소리 죽여 녀석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었다.
쓱.
내가 녀석의 오른쪽 뒤편에서 유령처럼 나타나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래? 안에 얼마나 들었던 것 같니?”
“······!”
꼬마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기도 전, 쓱, 하는 기척과 함께 이번엔 왼쪽 뒤편에서 쉐론이 환하게 웃으며 나타났다.
“잠시 우리랑 같이 가줄래, 꼬마야?”
우리는 아이가 도망칠 일말의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양옆에서 녀석의 가녀린 양팔을 단단히 붙들어 팔짱을 꼈다.
내가 녀석을 내려다보며 잔혹하게 씩 웃어 보이자, 안색이 잿빛으로 변한 아이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쉐론이 보란 듯이 허리춤의 단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녀석의 귓가에 서늘한 경고를 흘렸다.
“소리 지르면, 오늘 밤 안으로 칼로스 낯짝을 보게 될 거야.”
그렇게 우리는 인근의 인적이 끊긴 외진 골목길로 녀석을 끌고 가 구석에 몰아넣은 뒤, 본격적인 심문을 시작했다.
녀석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바닥에 넙죽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돈도, 돈도 다 돌려드릴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아이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울상이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고작 돈 주머니 때문에 자신을 붙잡아 온 줄로 굳게 착각한 모양이었다.
뭐, 겸사겸사 그것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 눈짓을 받은 쉐론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이름이 자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