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어둠의 망토

당황한 놈들은 방 문을 열어둔 채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갔다.

놈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지하실을 뒤지는 소동을 틈타, 나는 어둠의 망토를 쓴 채 천천히 움직였다.

녀석들의 눈을 피해 어두운 그늘만을 골라 웅크리며 이동한 끝에, 나는 마침내 아이들이 갇힌 층으로 올라왔다.

헌데,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철창 감옥 안을 들여다본 순간, 나는 숨을 들이켰다.

아이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울부짖으며 갇혀 있던 10여 명의 아이들이 흔적도 없이 온데간데없었다.

‘아차, 놈들이 계획을 앞당기겠다고 한 게 바로 이걸 뜻하는 거였나!’

속 가득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고통을 감내하며 배후를 캐겠다고 멍청하게 버틸 게 아니라, 진작 반지를 빼고 힘을 개방해서 놈들을 쓸어버렸어야 했다.

뼈저린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지금은 자책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어떻게든 흔적을 찾아야 한다.’

나는 어둠의 망토를 단단히 여민 채, 아이들의 행방을 쫓아 서둘러 저택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저택 밖의 어두운 그늘에 숨어 숨을 죽이고 있을 때였다.

저택 본채에서 나온 두 사내가 내 앞을 지나치며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 명은 아까 부하를 무자비하게 짓밟던 그 고급스러운 옷차림의 사내였고, 다른 한 명은 그조차 고개를 숙일 만큼 한눈에 봐도 신분이 훨씬 높아 보이는 중년 사내였다.

“······아이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안전하게 옮겼으니, 기사단 끄나풀 녀석이 깨어나 도망친다 한들 절대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고급스러운 옷의 사내가 비굴하게 웃으며 중년 사내의 눈치를 살폈다.

“곧 만월입니다. 의식이 시작되면 모든 게 우리 뜻대로 끝날 테니, 영주님께서도 결국엔 우리를 인정해 주실 겁니다.
그러니 너무 우려하지 마십시오. 훗날 모든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해도, 그때는 그 누구도 결과를 뒤집지 못할 테니까요.”

‘만월······? 의식이라니?’

두 사람의 대화가 멀어지며 내 머릿속에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놈들의 목적은 단순한 인신매매가 아니었다.

다가오는 보름달의 밤, 아이들을 제물로 삼아 거대한 금기를 저지르려는 게 분명했다.

게다가 옆의 사내를 ‘영주님’이라 부른 것으로 보아, 오크웰의 현 영주가 이 끔찍한 음모의 몸통이라는 사실이 완전히 확인된 셈이었다.

나는 영주의 저택에서 한참을 빠져나와 마차가 왔던 길을 조심스럽게 되짚어 가고 있었다.

반지의 제약 속에서 회복력이 작동하고 있다 한들, 온몸을 뒤덮은 피멍과 타박상은 여전했다.

나는 혹시 모를 추격조를 경계하며 숲의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절뚝절뚝 걸음을 옮겼다.

그때, 저 멀리서 다급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낯익은 실루엣이 나타났다.

쉐론과 레이나, 그리고 빌이었다.

나는 숲에서 나와 그들을 향해 힘없이 손을 들었다.

“······한스?!”

멀리서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한 레이나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세 사람은 마차가 먼지를 뿜으며 급정거하기가 무섭게 말에서 뛰어내렸다.

거동이 불편해 비틀거리는 내게 가장 먼저 달려온 레이나가 내 어깨를 부축하며 안절부절못했다.

“한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온몸이 온통 피멍투성이잖아요!”

뒤따라온 빌도 경악한 얼굴로 내 상태를 살폈다.

“한스, 놈들에게 잡혔다가 탈출한 건가? 꼴을 보니 지독하게 당한 모양이군.”

상황을 파악한 쉐론이 무거운 목소리로 가세했다.

“일단 움직여야 해. 어서 오크웰 시내로 들어가서 안전한 여관부터 찾자.”

“아······ 안 됩니다. 시내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내가 고개를 저으며 그들의 말을 가로막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아까 엿 들었던 충격적인 진실을 뱉어냈다.

“아이들을 납치해 간 무리의 수장이······ 바로 오크웰 영주입니다.
지금 시내로 들어가면 놈들의 감시망에 걸려 곧바로 의심을 살 겁니다.
게다가 지금 탈출한 저를 잡으려고 영지 곳곳을 이 잡듯 뒤지고 있을 겁니다.”

“뭐라고······?”

영주가 배후라는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는 깊은 고민 끝에, 영주의 저택에서 비교적 가까운 수풀 속에 임시 야영지를 구축하기로 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아까 내가 저택을 빠져나올 때 놈들이 이미 한 차례 샅샅이 뒤지고 지나간 숲이었기에 오히려 지금은 그 근처가 가장 안전했다.

어느덧 사방이 어둑어둑해진 시점.

수풀 밖으로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레이나가 손바닥 위에 조그만 마법 불빛을 피워 올렸다.

나는 지난번 여행 중에 매직백에 남겨두었던 빵과 물, 육포를 꺼내 모두에게 나누어 주며 대강 저녁 끼니를 해결했다.

식사를 하며 나는 낮에 겪었던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하에 분명 아이들이 갇혀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탈출할 때쯤 놈들이 계획을 변경하겠다며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전부 옮긴 듯합니다. 문제는, 놈들이 아이들을 대체 어디로 데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쉐론이 의아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한스, 근데 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탈출한 거지?”

인간치고는 미미한 신체 능력인 내가 놈들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나온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투였다.

나는 아까부터 계속 들고 있던 거뭇한 천 쪼가리를 쉐론에게 슬쩍 내밀어 보여주었다.

“이 망토 때문이에요··· 제가 예전에 집에서 나올 때, 가문 보물창고에서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나왔었거든요. 근데 이게 보니까 어둠 속에서 쓰면 사람들 눈에 전혀 안 보이게 해주는 효과가 있더라구요.아까 써보니까 효과 하나는 확실했습니다.”

그 순간, 망토의 재질을 확인한 쉐론의 얼굴이 확 붉어지며 굳어버렸다.

“이······ 이건······?”

나는 무엇이 문제인가 싶은 멍청한 표정으로 쉐론을 쳐다보았다.

쉐론의 눈빛이 뭔지 모르게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 망토는 예전에 내가 엘프를 찾으러 갔을 때 얻은 것이었다.

그때 엘프 한 놈이 나를 감시하고자 이 망토로 은신한 채 숨어 있었는데, 뛰어난 감각을 지닌 나에게는 그런 은신이 별 의미가 없었다.

그대로 놈을 찾아내 두들겨 패준 덕분에 엘프 마을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 그놈이 또 어딘가로 숨지 못하도록 망토를 빼앗아 매직백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그 뒤로 그냥 별 의미 없이 방치해 두다가 이번에 세상에 나온 것인데······ 이게 혹시 잘 알려지지 않은 귀한 물건인가?

당시에는 엘프들 중에서 상당수가 소지하고 있길래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잠깐 하는 사이 레이나가 이어서 말했다.

“신기한 물건이네요.”

“근데, 이제 어쩌지?”

눈치 없는 빌이 육포를 씹으며 스스럼없이 물었다.

그러자 쉐론이 복잡한 감정을 내리누르며 차가운 목소리로 의견을 냈다.

“저 망토를 이용해서 녀석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내는 게 좋을 것 같군.
저걸 쓰고 놈들의 본거지에 잠입하는 게 어때? 다들 어떻게 생각하지?”

레이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동조했다.

“아, 쉐론 씨가 사용하면 정말 딱이겠는데요? 평소에 적을 만났을 때도 워낙 은신을 잘하셨잖아요.”

평소 쉐론의 날렵함과 은신 능력에 이 망토까지 더해진다면, 녀석들에게 잠입하는 것쯤은 충분할 거라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스쳤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쉐론에게 놈들의 다음 행동을 알아내기 위해 영주의 대저택으로 숨어들도록 이야기를 정리했었다.

쉐론의 뛰어난 은신 능력이라면 혼자 단독으로 움직이는 게 훨씬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출발 준비를 마친 쉐론이 혼자 가기에 앞서 나를 따로 살짝 불러 세웠다.

“한스, 너 ‘어둠의 망토’ 그거 진짜 너희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거 맞아?”

“네······ 근데 이거 뭐 대단한 물건인가요?”

“대단한 수준이 아니야. 이건 엘프들이 사용하는 아주 중요한 물건이거든. 이게 고작 인간 귀족의 손에 있었다는 건 좀 의아하단 말이지.”

그제야 망토를 보며 쉐론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역시, 흔한 물건이 아니었구나. 엘프 가드들이 흔하게 걸치고 다니길래 별거 아닌 줄 알았더니.’

나는 속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짐짓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정확히 어떤 물건인데요?”

“엘프 중에서도 마을을 지키는 정예 가드들이 주로 사용하는 장비야.
웬만하면 인간 세상에는 유출되지도 않고, 알려지지도 않은 물건이지.
그렇다면 답은 둘 중 하나야. 네가 아주 먼 엘프의 피를 이어받은 하프 엘프의 후손이거나······
아니면 누군가 엘프를 죽이고 약탈한 장물이거나.”

“히익! 엘프를 죽여요?”

나는 잔뜩 겁먹은 척 연기를 하며 눈을 크게 떴다. 내 기겁한 반응을 본 쉐론이 쓴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슬슬 출발해야 하니까 자세한 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아무래도 나중에 너희 본가에 한번 들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

쉐론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상당히 복잡한 심경이 되기 시작했다.

젠장. 있지도 않은 내 가문의 본가를 나중에 쉐론에게 어떻게 보여줘야 한단 말인가.

거짓말이 갈수록 감당하기 힘들 만큼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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