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할 틈도 없었다.
머리 위로 묵직한 둔기가 사정없이 내리쳐졌고, 눈앞이 번쩍하더니 이내 의식이 암전 속으로 가라앉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덜컹거리는 진동과 함께 깨질 듯한 두통이 밀려왔다.
억지로 눈을 떴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마차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구석에는 아까까지만 해도 덤덤해 보였던 아이들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의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끌려 들어오는 나를 보고,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마차 밖에서 놈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찮은데 그냥 여기서 죽이고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아니, 건드리지 마. 혹시라도 수도 기사단의 끄나풀이면 골치 아파진다.
이놈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뒤에 누가 더 있는지 알아내는 게 먼저야. 아지트에 도착하면 아주 탈탈 털어주지.”
놈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입안에 고인 비릿한 핏물을 삼켰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치밀한 놈들에게 걸린 모양이다.
마차는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반나절쯤 지났을까, 밖에서 한 녀석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크웰이 보이는군.”
“하아, 이제 이 짓도 곧 마무리인가?”
푸념 섞인 대화 속에서 들려온 지명이 내 가슴에 박혔다. 오크웰. 어제 시장통에서 노인에게 들었던 그 이름이었다.
‘칼로스의 자손 중 하나가 오크웰 영주의 딸과 결혼했다는 이야기···’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절묘했다.
칼로스의 행적을 쫓던 내가, 내 자손이 있을지 모른다는 영지로 끌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선 15세 소년들을 모아 무언가 불길한 일을 꾸미고 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키기 시작했다.
■ ■ ■
한편, 루미나리스 성벽으로 이어지는 어느 외진 골목길.
쉐론에게 급히 이야기를 전해 들은 레이나와 빌은 지체 없이 합류하여 세 사람은 한스가 남긴 ‘X’ 표시를 이정표 삼아 미로 같은 골목을 헤치고 나갔다.
마침내 성벽 외곽의 한적한 쪽문을 빠져나오자, 줄기차게 이어지던 한스의 흔적이 뚝 끊겨 있었다.
더 이상 어디에도 ‘X’ 표시는 보이지 않았다.
쉐론이 초조한 듯 주변을 훑어보던 그때, 레이나가 풀숲 근처 바닥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보세요! 깊게 파인 마차 바퀴 자국이에요. 그리고······.”
레이나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흙바닥에 점점이 떨어진 붉은 핏자국이 있었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선명한 혈흔이었다.
쉐론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아무래도 한스가 놈들에게 들킨 모양이에요. 서둘러야겠어요!”
레이나가 단호하게 상황을 정리하며 빌을 돌아보며 말했다.
“빌,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당장 말을 사오든 빌려오든 하세요! 시간이 없어요! “
세 사람은 한스가 남긴 마지막 비명 같은 핏자국을 따라, 숲속으로 이어진 마차 길로 망설임 없이 몸을 움직였다.
■ ■ ■
한편, 마차는 오크웰 영지의 시가지를 우회하여 외곽으로 돌아들더니, 이내 거대한 대저택의 뒷문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봐도 영지 주인의 거처였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영주가 이 납치범들과 한패란 말인가?
내 자손이 결혼했다던 영지에서 이런 추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저택 깊숙한 곳에 도착하자, 놈들은 마차에 실려 있던 아이들을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나 역시 포박당한 채 바닥으로 끌어 내려졌다. 그때, 고급스러운 옷차림을 한 낯선 사내 하나가 다가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놈은 뭐야?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데, 15세가 맞아?”
“아닙니다. 이자는 저희 뒤를 밟던 놈입니다. 수상해서 일단 잡아왔습니다.”
부하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내의 주먹이 대답한 녀석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부하가 바닥을 뒹굴었다.
“이 병신 같은 놈아! 그럼 최소한 눈이라도 가리고 왔어야 할 거 아냐!
이놈이 여기까지 오는 길을 다 봤을 텐데, 뒤처리를 이따위로 해?”
“죄, 죄송합니다! 상황이 급해서 그만······.”
사내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바닥에 쓰러진 부하를 연신 발로 짓밟았다.
“죄송하면 다야? 이놈이 기사단 끄나풀이기라도 하면 네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란단 말이다!”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저택의 구조를 살폈다.
사내의 태도로 보아 이곳은 단순한 아지트가 아니라,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될 ‘금기’가 행해지는 장소임이 분명했다.
무자비한 폭행이 끝난 후, 사내는 숨을 씩씩거리며 아이들과 나를 지하 깊숙한 곳으로 끌고 갔다.
어둡고 습한 지하 통로를 따라 내려가자, 사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또래 아이들이 몇 개의 철창감옥에 나뉘어 갇혀 있었다.
놈들은 새로 데려온 아이들을 빈 감옥 안으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
하지만 나만큼은 감옥이 아닌, 지하의 더 깊고 은밀한 방으로 따로 끌고 들어갔다.
놈들은 나를 낡은 나무 의자에 앉히고는, 밧줄로 온몸을 단단히 묶어 고정시켰다.
이윽고 부하를 패던 사내가 내 턱을 거칠게 치켜들며 물었다.
“너 어디서 왔어? 기사단 소속이냐?”
나는 잔뜩 겁먹은 척,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그, 그냥 아이들이 무리 지어 가길래 신기해서······ 궁금해서 쳐다본 것뿐입니다.”
“이 쥐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놈의 거친 발길질이 가슴에 꽂혔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나는 의자에 묶인 상태 그대로 바닥에 보기 좋게 나동그라졌다.
“이 자식이 쉽게 입을 열 생각이 없군. 매가 약이지.”
사내가 가죽 채찍과 둔기를 집어 들었고, 이내 지독한 고문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야말로 곤죽이 되도록 처맞았다.
평범한 인간의 몸이 된다는 게, 그리고 타인의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낸다는 게 얼마나 끔찍하고 아픈 일인지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 무적의 정점에 서 있던 칼로스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여러 전쟁을 치르며 몇 번의 위기와 고난은 있었을지언정, 이렇게 무력하게 육체가 짓겨지는 생생한 통증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
‘······크윽!’
비명이 입안의 핏물과 함께 터져 나왔다.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당장이라도 빼버리고 싶은 충동이 수십 번도 넘게 들이쳤다.
반지만 빼면, 이까짓 녀석들쯤은 손가락 하나로 먼지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적들의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이 저택의 진짜 배후와 목적이 무엇인지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이 고통을 버텨내야만 했다.
“쳇, 벌써 기절한 건가? 맷집 한번 약한 놈이군.”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는 와중에도 사내가 혀를 차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일단 가자. 밖에서 눈치를 채는 자들이 생긴 모양이다. 계획을 변경하고 서둘러 진행해야겠어.”
철문이 무겁게 닫히고, 놈들의 발걸음 소리가 동굴 같은 지하 복도 너머로 점점 멀어졌다.
나는 지독한 어둠 속에서 겨우 붙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통으로 뒤범벅되었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반지의 제약으로 칼로스의 회복력은 발휘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일반인보다는 빠른 회복력 덕에 지옥 같던 통증이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나는 욱신거리는 몸을 추스르며 놈들이 남긴 말을 되씹었다.
‘일을 서둘러 진행하겠다고?’
불길했다.
단순히 아이들을 가둬두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놈들이 말한 ‘일’이란 아이들을 어딘가로 팔아넘기는 처분일 가능성이 컸다.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선 그들을 구해내는 게 급선무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욱신거리는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의자에 묶인 상태 그대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운 뒤, 벽을 향해 강하게 체중을 실어 들이받았다.
쿠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몇 번이나 강한 충격을 가하자, 마침내 낡은 나무 의자의 팔걸이가 쩌적 갈라지며 부러져 나갔다.
틈이 생기자 꽁꽁 묶여 있던 밧줄이 스르륵 풀리기 시작했다.
전생에 지구에서 봤던 영상이 어렴풋이 기억나 시도해 본 건데, 이게 진짜 통할 줄은 몰랐다.
역시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많이 보고 배울 일이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놈들은 내 낡은 매직백을 가치 없는 가방이라 생각했는지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있었다.
어차피 소유주인 내가 죽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내용물을 꺼낼 수 없는 가방이었다.
‘유물 중에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게 있을지도 몰라.’
나는 급히 매직백을 열고 쓸만한 물건이 있는지 뒤지기 시작했다.
가방 안을 거칠게 뒤적거리던 내 눈에 낯익은 물건이 걸려들었다.
‘어둠의 망토’였다.
어두운 곳에서 이것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주변의 어둠과 동화되어 완벽하게 모습을 감춰주는 은밀한 유물이었다.
망토를 꺼내 들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확인 하려는 찰나, 문밖 복도 너머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놈들의 무리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찰칵, 잠겨 있던 자물쇠가 열리고 거칠게 문이 열렸다.
나는 잽싸게 방 안의 가장 어두운 구석으로 몸을 날려 어둠의 망토를 뒤집어쓴 채 숨을 죽였다.
방 안으로 들어온 놈들은 텅 빈 의자와 굴러다니는 밧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 이 새끼 어디 갔어?!”
“말도 안 돼! 여기가 외길이라 분명히 우리랑 복도에서 마주쳤어야 하잖아! 어떻게 된 거야?”
“큰일이다! 영주님이 아시면 우릴 가만두지 않으실 거야. 어서 놈을 찾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