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우리 파티는 길드로 향했다.
길드에 보고를 마친 뒤 약속된 보상을 받기 위해서였다.
겸사겸사 길드 측에서 파악한 칼로스의 마지막 행적도 확인하고 싶었다.
길드장은 우리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환대했다.
“오, 소문의 주인공을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훑어내리며 슬쩍 떠보듯 물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칼로스는 엔데르 산맥의 산장에서 신의 심판을 받은 흔적만 남겼다더군요.
그런데 세간의 소문은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당시 산장 바닥에 칼로스의 것으로 보이는 처참하게 뜯겨 나간 살점과 가죽들이 가득 널려 있었다던데···
혹시 정말로 칼로스를 그렇게 단칼에 보내신 겁니까?”
나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맞아요. 그 현장에 저희 파티가 다 같이 있었거든요.
길드장님까지 그런 헛소문을 믿으시면 어떡해요? 이 친구가 아주 곤란해하고 있다고요.”
옆에서 지켜보던 레이나가 다행히 거들어 주었다. 그러자 쉐론이 쐐기를 박듯 한마디 보탰다.
“저 반푼이가 칼로스를 죽인 거면 나는 신이겠네.”
이건 좀 과하다 싶어 내가 째려보자, 쉐론은 콧방귀를 뀌며 시선을 피했다.
“아, 그렇군요. 하하하! 역시 소문이란 믿을 게 못 되는군요. 어쩐지 보상금이 실력자에 대한 현상금치고는 적다 싶었습니다.”
길드장은 머쓱한 듯 웃으며 서류를 정리했다.
“자, 증서 확인이 끝났으니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총 1만 골드입니다.”
솔직히 귀족인 내게는 그리 놀라운 액수가 아니었지만, 파티원들은 그 자리에서 넋이 나갔다.
1만 골드화라면 루미나리스 왕국 외곽에 대저택을 사고도 남을 거금이었다.
“한스! 이제 다시 귀족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됐어요!”
레이나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외쳤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약속한 대로 이 돈은 우리 파티원들의 숙박과 생활비를 책임지는 데 쓸 겁니다.”
“고맙다, 물주님! 하하하!”
빌이 내 어깨를 툭 치며 호탕하게 웃었고, 쉐론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그럼 이제 미스릴 검 값부터 청구해야겠군.”
다들 한마디씩 던지며 즐거워하는 사이, 나는 그 엄청난 양의 골드를 매직백에 툭툭 챙겨 넣었다.
역시 왕국의 수도답게, 이만한 거금이 지체 없이 단번에 지급되었다.
묵직해진 주머니를 두드리며 집무실을 나서자마자, 우리는 곧바로 다음 목표인 칼로스의 행적을 쫓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우선 각자 흩어져 칼로스의 행적을 조사하기로 했다.
거대한 수도인 만큼 도처에 정보가 널려 있을 터였다.
레이나는 길드 인맥을 활용하기로 했고, 빌은 술기운에 섞여 나오는 정보를 찾아 술집 거리를 돌기로 했다.
쉐론은 정보를 얻기 가장 좋은 뒷골목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인 길거리의 소문을 훑기로 하고, 저녁에 여관에서 다시 모이기로 한 채 헤어졌다.
수도가 워낙 넓어 하루 만에 모든 곳을 훑기는 무리였지만, 나름대로 소득은 있었다.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떠드는 칼로스 이야기나 노인들의 옛 기억 속에 남은 단편적인 정보들을 수집했다.
나는 여러 잡스러운 정보를 들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이어서 쉐론과 레이나가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거하게 취한 빌이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들어섰다.
빌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식탁에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내일 아침,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기억이나 할지 의문이었다.
결국, 술 취한 빌을 제외하고 우리끼리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먼저 쉐론이 입을 열었다.
“뒷골목 부랑자들에게 들은 얘기인데, 최근 어떤 집단이 가난한 15세 사내아이들을 여럿 데려갔다고 하더라고. 그 과정에서 ‘칼로스’의 이름을 언급했다는데,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아.”
레이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도 길드에서 신경 쓰이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칼로스가 죽은 뒤, 그의 힘을 계승할 자가 있다고 믿는 무리들이 어제 길드를 들쑤시고 다녔대요. 크게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지만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오늘 길거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갈무리하며 말했다.
“전 칼로스의 자손이 ‘오크웰’이라는 영지에서 영주의 딸과 결혼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 외에도 칼로스의 유령이 나타났다는 식의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들도 있더군요.”
여러 추측이 오고 갔지만, 결국 화제는 하나로 모였다. 레이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른 것보다 성인이 되기 직전인 15세 아이들을 데려갔다는 소문이 계속 걸려요. 그게 칼로스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나도 그게 가장 신경 쓰여. 칼로스와 상관없는 일이라 해도, 아이들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니까.”
쉐론의 말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의 납치와 칼로스라··· 어딘가 뒤틀린 구석이 있었다.
단순한 유괴 사건이라면 왜 하필 죽은 칼로스의 이름이 거론되는 걸까?
우리는 다른 잡다한 소문들은 제쳐두고, 사라진 아이들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만약 이 소문이 사실이고 유괴나 납치와 관련된 사건이라면, 결코 가볍지 않은 사안인 데다 해결했을 때 길드로부터 확실한 보상과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아이들을 데려간 녀석들의 행방이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들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가 관건이었다.
“좋아, 내일은 내가 뒷골목을 샅샅이 뒤져볼게. 그런 놈들은 분명 어딘가에 자취를 남기게 마련이니까.”
쉐론이 단호하게 말하며 전의를 다지더니, 내 쪽을 쓱 쳐다보며 덧붙였다.
“한스, 너도 같이 가. 너같이 맹한 얼굴이 옆에 있어야 경계심을 덜 사거든. 그리고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 한 사람이라도 상황을 외부에 알리는 게 좋으니까.”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나 역시 동의한다는 듯 거들었다.
“그럼 제가 이 사건과 유사한 의뢰가 길드에 접수된 게 있는지 조금 더 상세히 알아볼게요. 두 분은 몸조심하시고요.”
우리는 각자 역할을 나누며 의지를 다졌지만, 여전히 식탁에 코를 박고 잠든 빌이 문제였다.
레이나는 여전히 드르렁 소리를 내며 자는 빌을 보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빌은···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이야기해요. 지금은 깨워봤자 술 냄새밖에 안 날 테니까요.”
레이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일의 일정을 정리했다.
* * *
다음 날, 숙취에서 깬 빌과 레이나는 길드로 향했고, 나와 쉐론은 뒷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정보를 수집했다.
한참을 헤매던 중,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수상한 무리가 한 부부를 앞에 두고 아이를 설득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자네들에게도 좋은 일이라네. 진짜로 힘을 각성하기만 하면, 칼로스만큼은 아니더라도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기회가 아니겠나?”
“하지만··· 한 번 가면 영영 못 돌아올 수도 있다면서요.”
“힘을 얻으면 아마 딴사람이 되겠지. 하지만 자식이 잘되는 게 부모에게는 더 중요한 법 아닌가?”
대화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니, 아이의 창창한 앞날을 미끼로 부모를 꼬드기는 모양새였다.
‘가족 같은 분위기’니 뭐니 하는 말에 속아 노동을 착취당하는 건 지구에서도 흔한 일이었다.
나 역시 그런 감언이설에 속아 고생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 말은 대개 ‘개 같은 분위기’의 완곡한 표현일 뿐이다.
이곳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수도라 해도 뒷골목의 가난한 이들에게는 입 하나를 줄이고 아이의 미래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는 유혹은 거부하기 힘들 터였다.
부부가 망설이자, 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제가 가서 꼭 성공해서 돌아올게요.”
아이가 스스로 결심을 굳히자 상황은 종결되었다. 놈들이 아이를 데리고 이동하려 했다.
당장 쉐론에게 알려야 했지만, 10분 뒤에 약속 장소로 가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놈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지금 바로 뒤를 밟아야 했다.
나는 급한 대로 길가 벽면이나 바닥에 돌조각으로 작은 ‘X’ 표시를 남기기 시작했다.
쉐론이 제발 이 흔적을 알아채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그들의 뒤를 쫓았다.
■ ■ ■
한편, 약속 장소에서 10분째 기다리던 쉐론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녀석, 어디로 간 거야? 설마 무슨 일이라도 당한 건가?”
불안해진 쉐론은 내가 조사하기로 했던 구역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골목 귀퉁이 벽면에 살짝 새겨진 ‘X’ 표시를 발견했다.
“······이건?”
그러고 보니 아까 지나온 길목 저편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다. 최근에 급히 그어낸 듯 거칠고 날카로운 흔적. 쉐론은 단번에 눈치를 챘다.
“아무래도 녀석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뒤를 쫓아간 모양이네.”
■ ■ ■
한참 동안 복잡한 골목을 지나자, 평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외곽의 작은 쪽문이 나타났다.
성벽 한 구석에 붙어 있는 이름 없는 통로였다.
놈들은 그 통로를 통해 유유히 성 밖으로 빠져나갔고, 나 역시 거리를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그 뒤를 쫓았다.
숲속 깊은 곳에 몸을 숨기고 지켜보니, 놈들은 마차 한 대를 대기시켜 놓고 두 명 정도의 아이들을 태우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리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기괴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마차에 몰래 올라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갑자기 나타나서 태워달라고 할 수도 없고···’
추적 방법을 고민하며 숨을 죽이던 찰나였다. 바로 등 뒤에서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쥐새끼 한 마리가 붙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