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나는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당시의 나는 상대와 전투할 때 항상 놈들의 한계치가 궁금했을 뿐이다.
그래서 바로 숨통을 끊는 대신, 끊임없이 도발하며 녀석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곤 했다.
그래야 가장 잘 익었을 때 그 열매를 따 먹는 보람이 있으니까.
칸쟈크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늑대보다 스무 배는 더 거대한 덩치를 가진 그놈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해서 계속 약을 올렸을 뿐이다.
미쳐 날뛰던 녀석이 나를 쫓아오다 실수로 마을 몇 개를 짓밟은 것이다.
결국 최후엔 깨갱 소리조차 못 내고 죽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작은 마을들 중에 아직 수복이 덜 된 곳으로 갈 거예요.
오늘 아침 일찍 길드에 들러서 적당한 곳을 세 군데나 알아봐 뒀거든요.
보상도 두둑하죠. 우리 ‘스로칼 파티’의 업적이 또 하나 쌓이는 거라구요. 히히!”
레이나가 리더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참 명석하고 행동력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그런데 문득 생소한 단어가 귀에 걸려 내가 물었다.
“스로칼 파티요? 우리 파티 이름이 있었나요? 무슨 뜻입니까?”
내 질문에 쉐론이 육포를 질겅 씹으면서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별거 아니야. 우리가 다 칼로스 추적자잖아?
그래서 ‘칼로스’를 거꾸로 뒤집어서 지은 거지.
스로칼! 하하하, 멋지지 않아?”
“……!”
순간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칼로스를 거꾸로 해서 스로칼이라니.
재앙이라 불리던 시절의 내 이름을 뒤집어놓은 파티에 들어와, 내가 과거에 장난치다 망가뜨린 마을을 수습하러 간다?
인생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내 똥을 치우러 가는데 파티 이름은 내 이름의 아나그램(문자배열놀이)라니···
“…이름 참, 창의적이네요.”
내 떨떠름한 반응에도 레이나는 그저 자기들의 기묘한 열정이 통했다고 생각하는지 에헤헤,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할 일이 결정되자 우리는 지체 없이 움직였다.
세 곳의 후보지 중 가장 가까운 마을부터 공략하기로 했다.
레이나와 빌, 그리고 쉐론은 벌써부터 영웅이라도 된 양 들뜬 기색이었다.
■ ■ ■
한편, 한스 일행이 마을 어귀를 벗어날 무렵.
반대편 가도에서는 피투성이가 된 채 다리 한쪽을 잃은 처참한 형색의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앙상한 나무막대 하나에 간신히 몸을 지탱한 채 어기적거리며 마을로 들어서는 사내의 몰골은 그야말로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어제 레이나 일행이 위기를 맞이했을 때, 한스가 그들을 살리면서 맨 마지막에 처리했던 놈이다.
녀석은 다리가 잘리고 한스의 발길질에 채여 멀리 날아갔었다.
하필 한스의 발길질에 날아간 곳이 깊은 호숫가였던 덕분에 목숨줄만은 붙어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 대가로 왼쪽 다리를 잃었으나, 어쨌든 살아남았으니 천운이라 해야 할 터였다.
흙먼지와 굳은 피로 얼룩진 녀석의 깊게 파인 눈구멍 속에는, 지옥에서나 돌아왔을 법한 영혼 없는 동공이 텅 비게 들어차 있었다.
■ ■ ■
모리야 마을에서 나와 반나절쯤 걸었을까, 저 멀리 앙상한 뼈대만 남은 폐허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는 평화로웠을 마을이었다.
마을 경계에 들어서자마자 짐승 특유의 지독한 노린내가 코를 찔렀다.
늑대 무리의 냄새였다.
레이나와 동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며 무기를 고쳐 쥐었다.
“한스 씨, 너무 긴장하지 마요. 우리가 있잖아요.”
레이나가 내 어깨를 다독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그녀가 왜 저런 말을 하나 싶어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내 다리가 보기 흉할 정도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맞다. 이거 반지 때문이지.’
내 정신은 늑대 냄새를 맡으며 ‘오늘 저녁은 늑대 고기인가’ 따위의 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반지의 힘으로 조정된 내 육체는 본능적인 공포에 사로잡힌 약자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하고 있었다.
참으로 지독한 성능의 빈약함이었다.
그때였다.
자기 영역에 인간이 발을 들인 것을 눈치챈 늑대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털을 곤두세우고 으르렁거리는 놈들의 눈빛에는 굶주린 광기가 서려 있었다.
전투의 문을 연 것은 쉐론이었다.
스펠 소드답게 그녀의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마법의 잔영이 화려하게 일렁였다.
“이 개새끼들, 다 타 죽어라!”
그녀가 검을 한 바퀴 크게 돌리자, 검신에 머물던 마력이 폭발적인 화염으로 변해 늑대 무리를 덮쳤다.
화염에 휩싸인 늑대 한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고, 쉐론은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다음 타겟을 향해 전격이 실린 칼날을 찔러 넣었다.
옆쪽에서 늑대 하나가 그녀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빌이 포효하며 늑대의 대가리를 두 동강 내버렸다.
이어지는 레이나의 번개 마법까지. 2년간 손발을 맞춰온 녀석들답게 완벽한 연계였다.
‘생각보다 훌륭한 파티군.’
나는 속으로 녀석들의 실력을 나름대로 합격점이라 평가했다.
특히 마법과 검술을 저렇게 매끄럽게 잇는 걸 보니 쉐론 저 녀석, 성격은 저래도 실력은 진짜다.
내 할 일은 빌이 놓친 잔챙이들이 레이나 쪽으로 붙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이거 참···.”
생각을 해보니 지난 일주일간 내 몸에 맞는 가벼운 칼이라도 구했어야 했는데, 안일했다.
지금 내 손에 들린 건 이전에 에데르 마을에서 대충 주어온 일반 검이 전부였다.
관리도 안 된 채 방치되어 있던 놈이라 날은 무뎠고, 무게만 무식하게 나갔다.
하지만 내게는 충분했다.
늑대 한 마리가 빌을 지나 내게 달려들었다.
이런 류의 짐승은 행동 양식이 뻔하다. 이빨을 드러냈다는 건, 곧 달려들어 물어뜯겠다는 신호다.
나는 늑대가 도약하는 타이밍에 맞춰 한손으로는 검의 손잡이를, 다른 한손으로는 검 중간 부분을 지지하며 놈의 아가리 쪽으로 날을 세웠다.
늑대는 달려오던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검날에 입이 찢겨 나갔다.
놈은 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하다 이내 쓰러졌다.
‘역시, 나의 경험치는 내가 봐도 경이롭군.’
이 빈약한 몸과 무거운 고철 덩어리로도 이 정도 효율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감탄했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쉐론이 칼끝에 남은 불꽃을 털어내며 내게 다가왔다.
“한스! 아까부터 다리는 왜 그렇게 달달 떨고 있어? 무서워서 오줌이라도 지리는 줄 알았네.”
그녀가 킬킬거리며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러다 문득 내 발치에서 입이 찢겨 죽은 늑대 시체를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한스, 이 늑대 말이야. 어떻게 저렇게 죽었지? 이거 운이라고 하기엔 좀 무서운데?”
그녀의 날카로운 질문에 나는 무심하게 대꾸했다.
“머··· 달려들길래 칼을 세웠더니···.”
잠시 진지한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에 의구심이 스쳤다.
하지만 이내 다시 털털하게 웃으며 내 등짝을 후려쳤다.
“아, 됐어! 쫄아서 내밀고 있던 게 제대로 박혔나 보네. 야! 멍하니 있지 말고 여기 정리하고 다음 마을로 갈 준비나 하자구.”
빌이 등짐에서 말뚝 같은 것들을 꺼내며 말했다.
“이제 마무리해야지. 다들 알지? 이걸 마을 주변에 두르는 거.”
나는 의아한 눈으로 빌이 건넨 말뚝을 살피며 물었다.
“이게 뭔가요?”
내 질문에 레이나가 생긋 웃으며 답했다.
“아, ‘정화의 기둥’을 모르는군요. 이건 제가 만든 기둥이에요.
이게 있으면 앞으로 몬스터들이 마을에 들어오지 못해요.
우리가 몬스터만 잡고 떠난다고 해서 마물이 다시 안 오는 건 아니잖아요.
마을을 되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죠.”
옆에서 듣던 빌이 거들었다.
“이걸 만드는 능력이 있는 마법사는 흔치 않아. 레이나가 그 귀한 마법사 중 한 명이고 말이야.”
나는 말없이 매끄러운 기둥의 표면을 쓸어내렸다.
나는 평생 파괴만 하러 다녔지,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누군가 공들여 세운 성벽을 무너뜨리고 왕국을 지우는 법은 잘 알았어도, 무너진 마을을 다시 숨 쉬게 하는 법 따위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우리는 마을을 빙 둘러 일정한 간격으로 말뚝을 박아 나갔다.
작업을 마무리할 때쯤엔 이미 밤이 어둑해져 있었다.
마을 중앙 우물가에 모닥불을 피웠다.
모닥불 앞에 앉아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던 중, 문득 궁금증이 생겨 레이나에게 물었다.
“저… 레이나. 궁금한 게 있는데, 저 말뚝들은 효력이 얼마나 가나요? 한 번 박아두면 평생 가는 건가요?”
내 질문에 레이나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말뚝 자체만 멀쩡하다면 1년 정도는 결계가 유지돼요.
하지만 비바람 같은 날씨나 숲의 날짐승들이 건드리는 일도 잦아서, 실제로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마력이 깃든 물건이라 관리가 꽤 까다롭거든요.”
레이나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마을 어귀에 박힌 기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1년이라. 그 정도면 마을에 새로운 유민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기엔 충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우리는 잠을 청할만한 집을 찾아았다.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다행히 비바람을 피할만한 건물들이 꽤 남아 있었다.
침대가 있을 법한 집을 골라 안으로 들어섰다.
가구가 엉망으로 부서진 집안 바닥에는 말라비틀어진 핏자국이 흥건했다.
그리고 방 한구석, 부서진 작은 요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곁에는 뼈만 남은 유골이 되어버린 엄마가 아이를 품에 꼭 안은 채 죽어 있었다.
그제야 처음으로 실감했다.
내가 그동안 무슨 짓을 저질러 온 것인지.
기억 저편, 내 첫아이가 피를 흘리며 죽어갔던 자리가 선명하게 겹쳐 보였다.
심장이 조여드는 통증과 함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멈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았다.
나는 그 참혹한 잔해 앞에서 한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뒤따라 들어온 레이나가 그 모습을 보고 나직이 말했다.
“한스, 이런 광경은 처음 보나 보군요. 생각보다 훨씬 마음이 여린 사람이네요. 잠시 이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기로 해요.”
그녀의 제안에 우리는 나란히 서서 잠시 묵념을 올렸다.
그렇게 파티와의 공식적인 첫 전투가 마무리되었지만, 그날 밤 나는 끝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