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뜻밖의 사냥꾼

길드장의 눈에 확신이 서렸다.

“이제 칼로스의 죽음은 기정사실이 되었네. 조만간 전 대륙 길드에 공표될 예정이야.
한스 군, 비록 자네가 직접 발견한 시신은 없지만 그 결정적인 증거를 회수해온 공로를 인정받게 될 걸세.
보상이 꽤 짭짤할 거야.”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길드 윗선에서 논의 중이지만, 최소한 수도에 번듯한 집 한 채 정도는 살 수 있는 금액이 내려올 걸세.”

옆에서 듣던 레이나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밝게 웃었다.

“축하해요, 한스! 이제 다시 귀족의 품격을 되찾을 밑천은 마련했네요?”

레이나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웃었지만, 나는 그저 머쓱한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다.

사실 길드에서 준다는 보상금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내 허리춤에 매달린 매직백 안에는, 지난 백년간 모아놓은 평생 쓰고도 남을 보물과 금화가 산처럼 쌓여 있으니까.

거대한 호수에 물 한 컵 들이붓는다고 티가 날 리 있겠는가.

세상은 내가 죽었다고 확신하며 보상금까지 챙겨주려 안달이었지만, 정작 그 주인공인 나는 남몰래 입안에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우리는 흩어졌던 동료들과 다시 합류했다. 레이나가 지도를 정리하며 말했다.

“모리야 마을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어요.
2년 전 칼로스의 공식 기록이 이곳에 남아 있었기에 들른 것인데, 나머지 단서들은 다시 수소문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정보가 가장 많이 모이는 루멘 왕국의 수도, ‘루미나리스’로 가죠.
그곳이라면 분명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레이나의 말에 나는 슬며시 손을 들며 대답했다.

“그럼 바로 출발하는 건 아니죠? 저한테 맞지도 않는 무거운 철검을 들고 다니느라 애먹고 있었거든요.
무기를 저에게 맞는 걸로 좀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알겠어요. 그럼 저는 루미나리스로 이동할 방법을 알아보고 올게요.”

쉐론과 빌이 적당한 무기를 찾는 걸 도와주겠다며 나를 따랐고, 우리는 마을에서 꽤 규모가 큰 무기 상점으로 향했다.

쉐론이 진열대를 훑어보며 조언했다.

“미스릴로 만든 검 정도면 가볍고 좋을 것 같은데. 주인장, 가격이 어떻게 되나요?”

상인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순도 높은 미스릴 검은 수도에나 가셔야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는 이 정도가 최선이죠.”

상인이 꺼내 놓은 것은 중급 미스릴로 제련된 검이었다.

“가격은 200골드입니다. 귀족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가 좋은 물건이죠.”

마체테보다 조금 더 긴 정도의 길이.

이 정도라면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격 개념이 희박한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뼛속까지 귀족으로 살았던 나에게 1,000골드 따위는 푼돈에 불과했으니까.

빌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역시나 엄청나게 비싸군.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한스?”

빌의 반응을 보니 이들에게는 꽤 비싼 축에 드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내 눈에는 그저 그런 싸구려로 보였지만, 지금의 나는 ‘몰락 귀족’ 한스가 아닌가. 자금이 넉넉한 척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터였다.

내가 어정쩡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사이, 쉐론이 위풍당당하게 나섰다.

“내가 절반을 보태줄게. 네가 우리 숙식을 책임지는 처지인데, 한꺼번에 거금을 쓰면 타격이 크겠지. 이건 내 성의야.”

“그··· 그래도 괜찮을까요?”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쉐론은 마치 나에게 큰 은혜라도 베푼 듯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쉐론의 도움을 받아 중급 미스릴 검을 손에 넣었다.

저녁 무렵, 레이나가 우리와 합류했다. 그녀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운이 좋았어요! 마침 루미나리스로 향하는 상단이 있어서, 호위 임무를 맡아 여비도 벌 겸 함께 이동할 계획이에요.”

역시나 영리한 레이나였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상단의 마차에 몸을 싣고, 호위 임무를 겸하며 수도 루미나리스를 향해 길을 떠났다.

■ ■ ■

같은 시각, 모리야 마을 변두리의 허름한 여관.

한쪽 다리가 잘려 나간 채 폐인이나 다름없는 몰골로 누워있는 지난번 그릇에 맞아 눈이 찢어졌던 녀석이 후드를 깊게 눌러쓴 누군가와 은밀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칼로스가 죽은 것 같다고?”

“네, 그··· 그렇습니다.”

녀석의 목소리는 공포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후드를 쓴 자가 낮게 읊조렸다.

“그런데, 칼로스의 갑옷을 회수한 녀석이 엄청난 강자였다는 거지···”

“네! 분명 처음 싸울 때는 몸도 비실비실하고 제대로 된 무기도 못 들던 녀석이었는데, 갑자기 돌변해서 형님과 일행을 전부 죽였습니다. 그놈, 분명 칼로스의 유물과 깊은 연관이 있는 놈입니다!”

후드 밑의 눈동자가 예리하게 빛났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자가 차가운 시선으로 침상 위의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음······ 이제 그 몸으로는 더 이상 쓸모 있는 정보를 물어오긴 어렵겠군.”

“네? 그게 무슨······.”

녀석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후드를 쓴 자의 손에서 번뜩이는 빛이 스쳐 지나갔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녀석의 고개가 옆으로 툭 꺾였다.

피 한 방울 튀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신속한 참수였다.

쓰레기를 치운 듯 무심하게 손을 턴 자는 그림자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 ■ ■

걸어서 간다면 밤낮없이 사흘을 꼬박 가야 하는 거리였지만, 마차를 이용하면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며 가면 이틀이면 충분히 루미나리스에 도착할 수 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상단 마차 세 대가 루미나리스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수도로 향하는 길목이라 그런지 상단원들의 표정에는 활기가 넘쳤다.

이동 중에 코볼트 무리나 슬라임 같은 자잘한 몬스터들이 앞길을 막아섰지만, 우리 ‘스로칼’ 파티는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했다.

특히 새로 장만한 미스릴 검을 휘두를 때의 감각은 이전의 철검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동안은 내 체력에 맞지도 않는 무거운 철검을 들고 다니느라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하지만 가벼운 미스릴 검은 마치 내 몸의 일부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내가 가볍게 손목을 스냅해 코볼트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자, 옆에서 지켜보던 쉐론이 감탄 섞인 칭찬을 건넸다.

“와, 한스! 검 하나 바꿨다고 실력이 이렇게나 좋아진 거야? 전보다 움직임이 훨씬 날카로워졌어!”

쉐론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도구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했다.

지금의 한스라는 몸은 예전만큼의 근력이 없기에, 무거운 검보다는 이런 날렵한 검이 실력을 발휘하기에 훨씬 적합했다.

처음에 코볼트가 덤벼들 때만 해도 실전의 두려움에 몸이 사정없이 떨렸었는데, 무기가 손에 익고 전투를 무사히 치러내자, 그 지독했던 떨림도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이제 이 몸으로도, 어느 정도 전투할 수준은 되었다.’

쉐론은 내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을 보며, 자신이 돈을 보태준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듯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상단은 식수를 구할 수 있는 작은 마을 변두리에 야영지를 꾸렸다.

상단에서 대접한 저녁 식사는 노숙 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따뜻한 수프와 갓 구운 빵의 구수한 향기가 야영지에 평화롭게 퍼져 나갔다.

식사를 마친 나는 잠들기 전, 새로 장만한 검을 조금 더 손에 익히기 위해 무리와 떨어져 인적 없는 숲으로 들어갔다.

달빛 아래에서 검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확실히 가벼웠다.

이 정도 무게라면 이제 장기전도 해볼 만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문제는 몸이었다.

머리로는 완벽한 궤적이 그려지는데, 따라오는 육체는 굼뜨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순간적인 반응력만큼은 죽지 않았다는 점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지금 내가 가진 패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얼마나 휘둘렀을까, 벌써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후우, 헉······ 헉······.”

나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작 이 정도로 지치다니,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바로 그때, 짙은 나무 그림자 사이로 검은 형체 하나가 유령처럼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칼로스의 유물들을 손에 넣은 쥐새끼가······ 드디어 꼬리를 잡혔군!”

낮게 깔린 목소리와 함께 숲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네?······ 누, 누구신지요?”

나는 당황한 척 말을 더듬으며 녀석을 살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내가 달빛 아래로 발을 내디디며 말했다.

“그 현장에서 칼로스가 죽으며 매직백이 터졌을 터. 내용물이 사방으로 쏟아졌을 텐데, 너 같은 놈이 감히 그 물건들에 손을 대다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당황한 척 말을 더듬으며 녀석을 살폈다.

아, 그 생각을 못 했다.

보통 매직백은 주인이 죽으면 마력의 흐름이 끊겨 공간이 파괴되고, 안에 있던 내용물들이 바깥으로 터져 나온다.

산장 바닥에 흩뿌려진 핏덩이와 내팽개쳐진 유물들을 떨구었으니, 녀석은 내가 칼로스의 시체에서 유물을 주워 담아 도망쳤다고 확신하는 모양이다.

정작 가방 주인인 나는 눈앞에 멀쩡히 살아 있고, 매직백이 터진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 안에는 본인의 힘을 2배로 증가시킨다는 ‘오르투스의 반지’가 들어있을 거다. 순순히 내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오르투스의 반지. 녀석의 말에 기억의 파편이 떠올랐다.

수십 년 전 어느 던전에서 얻었던 유물이다.

대단한 힘이 깃들어 있다는 소문이 자자해 공을 들여 손에 넣었지만, 막상 껴보니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아마 내 능력이 반지의 힘을 상회할 정도로 너무 컸던 탓이리라.

그래서 그냥 매직백 구석에 처박아 둔 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이놈은 그 ‘쓸모없는 장난감’을 노리고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실패한 사냥개 놈들처럼 내가 순순히 당할 거라 생각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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