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음모의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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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론은 한스가 준 망토를 착용하고, 한스가 설명해 준 대저택으로 숨어들었다.

지하 쪽은 이미 한스가 확인하고 이야기해 주었으니 굳이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가장 좋은 건 영주의 방을 찾아내어 영주의 대화를 엿듣는 일이었다.

그렇게 쉐론은 삼엄한 대저택 내부를 여기저기 탐색해 나갔다.

그러던 중, 영주의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무리 지어 이동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들의 뒤를 조심스레 밟았다.

본래도 은신이 뛰어난 쉐론이었지만, 한스가 준 어둠의 망토는 그녀의 능력을 한층 더 극대화해 주고 있었다. 기척이 완벽하게 지워진 것이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식당이었다. 보아하니 가족들이 모여 아침 식사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상석 가운데 의자는 비어 있었고, 그 우측으로는 영주의 딸로 보이는 젊은 여자와 그녀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사내가 자리했다. 좌측에는 나이가 지긋한 영주의 아들 둘이 앉아 있었다.

식사가 시작되자, 영주의 큰아들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이번 영지 검술 대회에서도 평민 출신 기사가 우승했다지? 자네도 뒷골목에서 구르던 시절이 생각났겠어.”

그러자 영주 딸의 남편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출신이 어디든, 검의 무게는 다 똑같은 법입니다. 저는 오직 가문을 위해 검을 쥘 뿐입니다.”

그 말에 영주의 작은아들이 깐쭉대며 거들었다.

“쯧쯧, 말하는 본새 하고는. 천한 피는 어쩔 수 없다니까. 힘자랑할 줄만 알지 귀족의 교양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으니 말이야. 하하!”

영주의 딸의 남편으로 보이는 사내는 그저 침묵을 지켰다.

보다 못한 영주의 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빠들 정말 너무하네요! 내 남편이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왜 매번 그렇게 눈치를 주는 건가요? 귀족의 교양 타령하기 전에 양심부터 챙기세요. 지금 우리 가문에서 내 남편만큼 제 몫을 해내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누가 봐도 영주의 딸은 남편을 지극히 아끼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때 뒤늦게 자리에 앉은 영주가 엄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아침부터 무슨 소란들이냐. 조용히들 밥이나 먹자.”

그렇게 식사를 마친 영주는 두 아들을 자신의 방으로 따로 부르는 눈치였다.

쉐론은 아까 저택을 둘러보며 보았던 가장 고급스러운 집무실을 떠올렸다.

그녀는 영주보다 한발 앞서 집무실로 숨어든 뒤, 방 안에서 가장 어두운 구석을 찾아 ‘어둠의 망토’를 둘렀다.

망토의 힘 덕분에 쉐론의 존재감은 완벽하게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잠시 후, 영주와 그의 두 아들이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영주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일은 잘 진행되고 있는 거겠지?”

큰아들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예, 곧 16세가 되는 15세 아이들은 이미 모두 모아두었습니다.”

그 말에 작은아들이 약간 우물쭈물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내 눈치를 보던 큰아들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다만······ 소속이 불분명한 끄나풀 하나를 놓쳤습니다. 추격을 서둘러야 할 듯한데, 어찌할까요?”

영주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냉정하게 말했다.

“만월이 되기 전에 수도에서 기사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적당히 둘러대고 시간만 벌면 된다. 확실한 증거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니 그들도 우리를 함부로 추궁하긴 힘들 거다.”

큰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뒤가 만월이니, 수도에서도 움직일 여유가 없을 겁니다.”

“몇 번을 말하지만, 아그네스와 에반 녀석이 절대로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

“물론이죠, 아버님. 당일날에 에반 녀석만 그 장소로 데려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영주가 씁쓸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아그네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중에 더 멋진 남편을 찾아주면 돼.”

구석에 숨어 있던 쉐론은 이 음흉하고 거대한 계획을 전부 귀담아들었다.
그리고 날이 저물 무렵, 조용히 저택을 빠져나와 한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 ■ ■

레이나가 물었다.

“쉐론, 아이들의 위치를 파악했나요?”

그 질문에 쉐론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이들의 위치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대신 엄청난 이야기를 듣고 왔어.”

어제에 비해 얼굴의 붓기가 많이 빠진 내가 거들었다.

“어떤 내용이길래요?”

“지난번에 한스가 말했던 영주 사위 있잖아. 진짜 칼로스의 후손인지는 확실하지 않은 것 같아.
실제론 뒷골목 출신 평민이라는 소리가 들리는데, 무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대.
그런데 그 영주 가문 놈들이······ 아이들하고 그 사위까지 제물로 바쳐서 무슨 괴물 같은 힘을 얻으려는 속셈이야.”

“그 사위의 힘을 빼앗으려고요?”

내 물음에 곁에 있던 빌이 안색을 핏기 없이 굳히며 경악했다.

영주 가문이라는 자들이 제 핏줄의 남편과 어린아이들을 한낱 제물로 취급한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은 모양이었다.

나 역시 미간을 좁히며 쉐론의 말에 집중했다.

쉐론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랬다.

영주 가문은 사위가 가진 압도적인 무력과 재능을 탐내 데릴사위로 들였지만, 정작 평민 출신인 그를 철저히 도구로만 여겨왔던 것이다.

이틀 뒤 만월의 의식을 통해, 아이들과 그 사위를 제물 삼아 그 강력한 힘과 생명력을 통째로 갈취하려는 음모였다.

그 사위라는 녀석이 나의 후손일지는 알 길이 없으나, 아무런 배경도 없는 뒷골목 평민 출신임에도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그만한 경지에 오른 녀석이라는 점에서 그 올곧은 노력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그런데 영주 놈들은 그 결실을 고작 제물 따위로 삼아 통째로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스스로 피땀 흘려 강해질 생각은 안 하고 남이 이뤄낸 것을 날로 먹으려는 추악한 탐욕이었다.

반드시 그 평민 사위와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

내 결의를 알 리 없는 쉐론이 말을 이었다.

“이틀 뒤 만월에 일을 거행한다고 했어. 위치는 여기서 서쪽에 있는 산의 정상이야.
우리가 그곳에 먼저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들을 구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당일날 의식이 치러지는 거라면 그때까지 아이들은 모두 살아있을 테니까.”

레이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자 빌이 조심스럽게 태클을 걸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전력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잖아.”

“그것도 확인하고 왔지.”

쉐론이 자신 있게 받아쳤다.

“이건 영주가 비밀스럽게 진행하는 일이라 그런지 따르는 수하가 아주 적더라고.
돈에 눈이 먼 익스퍼트 전사 한 명이 가장 강한 축이야.
나머지는 잔챙이들이고, 영주가 하이 메이지로 추정돼. 그리고 두 아들은 워리어 수준이지.
영주가 마법을 쓰기 전에 기습으로 먼저 처리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영주가 괜히 영주가 아니었다.

능력이 없는 자는 영주가 될 수 없는 세계였기에, 상대가 ‘하이 메이지’라는 말에 레이나의 안색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내가 슬쩍 끼어들며 물었다.

“우리 전력으로 그게 가능할까요? 원군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레이나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지금 수도에 가서 이 이야기를 한다 해도 증거가 없기 때문에 믿어줄지가 의문이에요.
상대가 한 영지의 영주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수도에서 우리 말을 믿고 움직여 준다 한들, 수도까지 가는 데만 반나절이 걸려요.
내일모레가 거사일인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요. 어떻게든 우리 선에서 해결해야만 해요.”

빌이 미간을 찌푸렸다.

“한스 말이 틀리진 않아. 비록 익스퍼트 전사와 워리어 몇 명 정도라면 우리 수준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겠지만, 하이 메이지의 마법을 정면으로 버텨내기엔 무리가 있어.”

그러다 갑자기 빌이 뭔가를 떠올린 듯 눈을 빛냈다.

“혹시······ 쉐론, 네 그 숨겨진 능력이 발휘되게 할 방법은 없나?”

아. 지난번에 다 같이 추측했던 ‘쉐론에게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저주 떡밥을 빌이 기억해 낸 모양이었다.

그 말에 쉐론이 버럭 화를 냈다.

“아, 진짜 그런 거 없다니까!”

“혹시 말입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극한의 위기 상황이 되어야만 발휘되는 저주 아닐까요?”

내가 슬그머니 거들었다.

팍!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더 화가 치민 쉐론이 먹던 사과를 내던졌다.

비참하게도 사과는 내 머리통에 정통으로 날아와 꽂혔다.

가뜩이나 어제 놈들에게 당해 여기저기 부어오른 자리에 제대로 유효타가 터진 것이다.

“악!”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바닥을 굴렀다.

두 남자의 한심한 꼴을 보던 레이나가 분위기를 다잡으며 말했다.

“확실하지 않은 것에 기대를 걸 순 없어요. 영주의 마법을 묶을 구체적인 방법부터 고민해 보도록 하죠.”

우선 대책을 세우기에 앞서 상황을 직접 살피기로 한 우리는, 다음 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서쪽 산 정상에 도착했다.

숲속에 숨어서 산 정상을 슬며시 살펴보니, 다섯 명 정도의 무리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정상 바닥에는 커다란 원으로 된 불길한 마법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내 경험상 흑마법 계열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거대한 중심 원을 기준으로 그 주위를 13개의 작은 원이 감싸듯 그려져 있었는데, 정황상 제물을 놓는 위치로 추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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