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악령의 숲(1)

60년전쯤, 온통 피로 얼룩져 메말라가던 내 삶에 아주 잠깐이나마 따스한 위로가 되어주었던 여자 마법사.

마법사의 거의 정점을 찍었던 그레이트 메이지의 그녀.

‘이름이······ 그래, 시리아였지.’

당시 시리아가 폐병의 치료제로 밤낮을 새워가며 연구하던 핵심 약초가 바로 그 실버문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녀는 마침내 그 폐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냈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세상에 전면 배포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이 약초가 고통받는 세상을 구할 거야>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내게 전달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세상을 구하겠다며 배포될 영약이 어째서 대중화되기는커녕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환상의 약초가 되어버린 걸까.

게다가 실버문이 자라던 땅은 왜 ‘악령의 숲’이라는 끔찍한 금역으로 변해 팽창하고 있으며, 시골 구석에 사는 레이나의 할머니는 세상을 구하려던 시리아의 유산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고 일단, ‘악령의 숲’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행에게는 긴 여독으로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댔다.

여관으로 돌아가는 척 일행과 헤어진 뒤, 나는 홀로 ‘악령의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악령의 숲’ 범위도 정확히 알수없을 뿐더러 실버문의 위치도 알길이 없다.

칼로스의 힘을 남용하면 실버문을 찾기 전에 내가 죽을 수도 있으니 이번에 ‘도망자의 신발’과 ‘어둠의 망토’를 믿어보기로 했다.

여차하면 한번에 칼로스의 힘을 개방하여 돌아오면 된다.

그렇게 나는 ‘악령의 숲’ 안으로 진입했다.

들어가자마자 언데드 무리들이 여기저기 나오고 있다.

나는 ‘도망자의 신발’을 사용해 숲 안으로 워프하듯 순식간에 이동했다.
그리고 ‘악령의 숲’답게 ‘어둠의 망토’는 적의 시선을 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워낙 체력이 약한 탓에 빠르게 이동한 뒤 망토에 몸을 숨겨 숨을 고르고, 다시 이동하기를 반복했다.

생각보다 숲이 넓긴했다.
그리고 정말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정말 모든 종류의 언데드를 마주한거 같다.

‘악령의 숲’이라고 할만 했다.

뭔 넘에 데스 나이트가 아무대나 돌아다니고 있는지..

중간에 뱀파이어 로드도 있었지만, 어찌어찌 잘 피해갔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미스릴급 파티 하나로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군대라도 끌고 와야 한다.

이건 전형적인 언데드 군단 형태이다.

이곳에 왜 언데드 군단이 모여있는지 알수 없지만, 일단 약초를 찾는데 열중했다.

악령의 숲 깊은 곳을 향해 신속하게 이동하던 중, 넝쿨에 덮인 아주 오래된 폐가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폐가 주변에는 수많은 약초가 아무렇게나 자라나 있었는데, 그 흔한 언데드나 마수들이 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은밀하게 흐르는 고위 마법의 흔적.

주변을 완벽하게 감싸고 있는 은닉과 방어의 결계 때문이었다.

이곳에 강력한 마법사가 상주했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나는 신속하게 폐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서자 사방에 가구 파편과 오래된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먼지가 가득 쌓인 낯선 풍경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지며 익숙하고 그리운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실험실이다.’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건 시리아의 실험실이었다.

그녀가 이 머나먼 변방 지역까지 내려와 은거했었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 무조건 ‘실버문’ 연구와 관련이 있을 터였다.

나는 긴장감으로 침을 삼키며 폐가 내부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망가진 실험기구들이 가득한 책상 위, 유독 먼지가 앉지 않은 작은 정육면체의 흑색 마석이 눈에 띄었다.

시리아가 생전에 중요한 기록을 남길 때 자주 사용하던 ‘메모리얼 크리스탈’이었다.

가만히 다가가 크리스탈 표면에 손을 얹자 ‘메모리 크리스탈’이 작동하였다.

스우우우―

희미한 마력의 빛과 함께, 크리스탈 위로 허공에 홀로그램 같은 잔상이 떠올랐다.

내 기억 속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초췌해진,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시리아의 모습이었다.

『 ······지금 제 모습을 보고 계신 분께 전합니다. 부디, 이 기록을 칼로스에게 전해주세요. 』

“······!!”

순간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이건 누군가에게 전하는 전언이 아니었다.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직 나에게만 도달한 그녀의 마지막 편지였다.

허공의 시리아가 서글픈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 칼로스······.

저의 눈먼 욕망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어요.

실버문을 완성하고 싶다는 일념에 눈이 멀어, 정체모를 이상한 집단의 도움을 받고 말았어요.

그 대가로 그들에게 실버문의 마력을 이용하는 마법을 알려주었는데······.

그게 신의 영역을 모독하고 ‘리치’를 소환하는 금단의 흑마법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들의 이유는 모르지만 나와 당신을 노렸던 거 같습니다.

칼로스, 부디······ 부디 그 리치를 물리쳐 주세요. 』

절박하게 애원하던 시리아의 잔상이 이윽고 눈물을 흘리며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비밀을 털어놓았다.

『 그리고······ 제 딸을 간신히 이곳에서 탈출시켰으니,

제발 그녀를 찾아서 꼭 돌봐주시기 바랍니다.

제 이기적인 말을 듣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녀는 당신의 딸이기도 하니까요.

아이의 이름은 실리예요.

우리 아이, 실리가 부디 무사히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 ······이들을 이 결계 속에 묶어둘 수 있는 시간은 고작 50년 안팎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들의 영역은 계속해서 커질 겁니다······. 』

뚝, 소리와 함께 빛이 바래며 크리스탈이 침묵했다.

방 안에는 오직 나만의 거친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전신을 관통했다.

내 아이였다고? 나와 그녀의 피를 이어받은 핏줄이 있었다고?

과거의 내가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빌런으로 살았을지언정, 내 자식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로 홀로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내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안전한 왕가나 대귀족의 가문에 맡겨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게 만들었겠지.
하지만 이 메시지는 나에게 오지 못했다.

시리아가 목숨을 걸고 친 결계 때문에, 수십 년 동안 그 누구도 이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해 전해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수수께끼가 핏빛 진실이 되어 맞춰졌다.

평생 아버지를 본 적도 없다던 60대의 치매 노인.

나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눈물을 흘리며 “아빠”라고 부르던 그 가련한 노인.

시리아의 연구물인 ‘실버문’의 존재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던 레이나의 할머니.

“······실리.”

이름조차 불러본 적 없는 내 친딸이, 부모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이 험난한 변방 땅에서 모진 세월을 버티며 홀로 늙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주먹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혈관 속 마력이 분노로 인해 거꾸로 뒤틀리며 타올랐다.

감히 내 딸의 인생을 망치고, 내 연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이 땅을 오염시킨 더러운 뼈다귀 새끼가 바로 이 너머에 있다.

‘리치.’

과거 대륙을 지배하던 시절, 나 역시 그 오만한 언데드의 왕들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놈은 전장이 커질수록 더욱 강해지는 존재였다.

시체가 쌓일수록 그만큼 군단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조건이 조금 달랐다.

시리아는 생전의 마지막 힘을 쥐어짜 이 폐가와 숲 주변에 강력한 은닉 결계를 쳤을 터였다.

그렇다면 결계가 온전했던 초기의 50년 동안, 리치는 단 한 명의 인간도 만나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놈이 취한 최초의 제물은······ 시리아였겠지.’

가슴 깊은 곳에서 차가운 분노가 불꽃처럼 튀었다.

결계에 가로막혀 굶주려 있던 리치에게 유일한 영양분이 되었던 시리아.

그리고 세월이 흘러 결계가 옅어지기 시작한 지난 수십 년간, 영문도 모른 채 전설을 쫓아 이 금역에 발을 들인 모험가들과 미스릴급 파티원들이 차례로 놈의 먹잇감이 되었을 터였다.

그렇게 숲으로 기어 들어온 침입자들을 죽이고, 그 시체들을 일으켜 군단을 불린다.

그 악순환의 결과물이 바로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악령의 숲’의 본질이었다.

시리아의 숭고한 결계는 무너졌고, 놈들은 이제 이 변방을 넘어 대륙 전체를 집어삼킬 군세를 구축한 셈이다.

상황 파악은 끝났다.

복잡하게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었다.

언데드 군단은 철저한 종속의 사슬로 얽혀 있는 법.

그들의 정점에 군림하는 단 한 마리, ‘리치’를 찾아내 소멸 시켜버리면 이 지긋지긋한 오염도, 숲을 가득 채운 언데드 군대도 흔적 없이 소멸할 터였다.

그 생각에 도달한 순간,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전설의 칼로스, 그 잔혹한 살의가 거칠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곳이 결계의 시작이었다면, 리치 역시 분명히 이 근처에 있을 터였다.

나는 곧장 폐가를 박차고 나갔다.

‘도망자의 신발’이 허공을 가르며 순간이동했다.

사방에서 기척을 감지한 언데드 무리가 파도처럼 몰려왔지만, 내 발끝조차 따라잡지 못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숲의 중심부에 도달했을 때, 기괴한 제단 앞에 모여 있는 고위 언데드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점에 선 존재, 리치였다.

그리고 놈의 좌우에는 앙상한 뼈만 남은 채 영혼을 저당 잡힌 마법사의 유골과, 과거 숲에 삼켜졌다던 미스릴급 파티원들이 껍데기만 남은 채 호위병처럼 서 있었다.

뼈만 남은 마법사의 예복. 시리아의 흔적이었다.

나는 그들 앞에 쓱, 하고 나타났다..

우르르 밀려들던 언데드들이 왕의 제단 앞이라 그런지 일제히 동작을 멈추었다.

리치가 안광을 번뜩이며 섬뜩한 쇳소리를 내질렀다.

《인간이여, 어떻게 살아서 여기까지 들어왔지? 기특하구나. 켈켈켈······. 》

그 오만한 비웃음을 들으며, 나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나 지금, 많이 화가 나 있다. 네 녀석을 키운 게 누구냐?”

《 누가 감히 이 몸을, 언데드의 왕을 키운단 말이냐! 켈켈켈! 》

“뭐, 그럴 줄 알았다.”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시리아의 영혼을 모독하고, 내 딸의 삶을 짓밟은 대가는 오직 하나뿐이다.

“너의 파티는 여기까지다.”

나는 손가락에 얽매고 있던 반지를 천천히 빼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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